뉴질랜드는 주거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나라야. 집 전체도 아니고 방 한 칸에 세 들어 사는 월세가 100만 원이거든. 도시 중심으로 들어가거나 화장실이 딸린 방이면 더 비싸져. 게다가 남편이랑 같이 살 곳을 찾다 보니 어지간한 돈으로는 집을 구할 수가 없더라고.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집 구하는 영상과 글을 정말 많이 찾아 봤는데, 커플의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처음 알아본 건 집 전체를 빌리는 방식의 "렌트"였어. 큰 집이 아닌 원룸 형태의 집은 렌트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우리는 몇 달 뒤에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게 문제였어. 집주인은 보통 1년 계약, 혹은 그 이상의 계약을 원했어. 내가 집주인이라도 그게 당연하지. 가끔 6개월 계약을 받아주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뉴질랜드에서 직업도, 친구도, 재산도 없는, 굉장히 못 미더운 세입자기 때문에 계약 근처에도 못 갔어. 서류 광탈이랄까.
그래서 거실을 공유하면서 방 한 칸에 사는 "플랫"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시티 근처에 있는 화장실 딸린 방을 알아보다가 점점 범위가 넓어졌어. 온갖 사이트를 통해 메일과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았거든. 게다가 커플은 받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고지해 놓은 집이 대부분이었어. 이제는 집이어디에 위치하든, 침대나 화장실이 있든 없든, 집 안에서 어떤 동물을 기르든, 커플 OK면 가리지 않고 연락을 돌리게 됐어. 그래도 거의 답이 오지 않았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방을 구하기 어려운시기래.
지난 일주일 동안 기대와 실망을 무한히 반복했어.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사진까지 첨부해서 깔끔한 사람이라는 것도 강조하고, 한국의 전문적인 직장에서 모아둔 돈도 있다고 열심히 어필했는데 딱히 먹히지 않은 것 같았어. 한국에서의 나는 분명히 유능하고 인정받는 사람이었는데, 뉴질랜드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 이 새로운 곳에서는 나를 증명할 만한 것들이 없었어.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끊임없이 거절 당한 적이 있었던가?
남편과도 자꾸 다투게 됐어. 남편은 한국에서 몇 주 뒤에 따로 오게 되었는데, 타지에서 내가 보내는 두서없는 카톡이 잘 이해되지 않았을 거야. 거기다 남편은 공감하는 말을 건네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편인데, 머나먼 한국에 있는 남편이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힘들었거든. 남편 딴에 도와준다고 찾아 보낸 것들은 대부분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어. 나는 답 없는 현실도 답답하고 같이 오지 못한 남편도 야속했어. 남편은 현지 상황을 체감하지 못 했으니 예민한 내 모습에 같이 지쳐갔지.
뉴질랜드에 몇 달 지내러 떠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부럽다고만 했어. 이렇게 집 구하기 절망 편이나 쓰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나아질 거라고 믿어. 뭐든지 처음 시작할 때, 처음 적응할 때가 가장 힘든 법이니까. 아마 언젠가는 희망편도 쓸 수 있겠지. 그리고 이렇게 힘들다가도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대자연, 그러니까, 분화구가 있는 낮은 산, 공원의 양 떼들, 작은 섬을 품고 있는 바다 같은 걸 보면 순식간에 마음이 정화되곤 해.
그래, 이것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오늘도 마음을 다스리러 나가봐야겠어.
오늘의 Tip 뉴질랜드에서는 trademe.co.nz/a/property 사이트를 가장 많이 이용합니다. Rent를 선택하면 집 전체를 통으로 빌리게 되고, Flatmates를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과 거실이나 화장실을 공유하면서 방 한 칸에 살게 됩니다. 단기 거주자들은 플랫메이트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장기간 거주한다면 집을 통으로 렌트한 후에 다른 플랫메이트를 구해서 집세를 충당하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