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야. 오늘은 아침부터 요가를 했어. 임시로 머물고 있는 호스텔에서 1주일에 딱 한 번 제공하는 무료 프로그램이라, 알람까지 맞추고 일찍 일어났어. 엄청 기대했는데 요가 선생님이 못 오셨다고 유튜브 요가 영상을 틀어주더라고. 네 명의 다른 투숙객이랑 같이 화면을 앞에 두고 자리를 잡았어.
한국에 있을 때도 거의 10년 가까이 요가랑 연을 맺어 왔어.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건 아니지만, 필라테스나 폴댄스, 크로스핏 같은 다른 운동을 몇 달 배우다가도 결국은 다시 요가로 돌아오곤 했거든. 요가는 근육의 이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아. 그리고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거든. 그러다 보면 내 몸뚱이랑 더 친해진 느낌이 드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어.
무엇보다 좋은 건 느리게 숨을 쉬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거야. 요가할 땐 호흡이 중요하거든. 바닥을 향해 내려가면서 숨을 내쉬고 상체를 들면서 숨을 들이쉬고 몸을 반 접으면서 다시 숨을 내쉬는 식이야. 내 몸이랑 호흡, 딱 두 가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진짜로 잡념이 사라지고 걱정을 다 잊게 되더라고. 남편은 가끔 내가 화가 나 보이면 요가 좀 하고 오라고 하기도 해.
실은 아무 준비 없이 맨 땅에 헤딩으로 뉴질랜드에 오면서 걱정이 태산이었어. 도착하고 나서 장보기, 은행 업무, 교통카드 만들기 같은 소소한 일들만 했는데도 언어가 자유롭지 못하니까 마음이 힘들더라고. 여행을 다닐 때는 '알 게 뭐야! 즐거우면 됐지!' 하는 마인드여서 낯선 환경을 겁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7개월 살기에 도전했거든.
구경꾼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이 되니까 마음가짐이 달라졌어. 여행할 땐 실패랄 게 없었어. 의도치 않았던 결과를 만나더라도 여행의 묘미라며 즐거워 했거든. 그런데 정착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매사에 한없이 신중해졌어. 멍청 비용을 쓰고 싶지 않은 소시민의 마음이 된 거지. 게다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더 밀접하게 부대끼다보니신경이 곤두서게 되더라고. 그래서 심신을 달래줄 오늘의 요가 수업을 간절히 기다렸어.
그런데 요가마저 쉽지가 않더라. inhale(들이쉬고). exhale(내쉬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거의 이것밖에 없었어. 선생님의 수업이 아니라 영상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 화면이 작아서 눈치껏 때려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 어떻게든 영어를 듣고 이해해 보려고 두뇌를 풀가동하고, 앞 뒤 옆 사람을 계속 흘긋거리느라 내 몸뚱이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 동작이 꼬이니까 간신히 들은 inhale과 exhale도 엉망이 되더라고.
기대하던 마음의 평화와 안식은 못 찾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어. 이 7개월을 행복하게 보내려면 영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먼저 걸어봐야겠어. 당분간은 마음의 부담이 가득하더라도, 언젠가는 영어 요가 클래스에서 평온해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의 Tip 뉴질랜드 도착 후 2주 정도는 호스텔에 머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호스텔 스태프와 다양한 투숙객으로부터 정보도 얻고, 천천히 주변을 다니면서 거주할 만한 곳을 찾아 보세요. 오클랜드 시내는 버스 노선이 잘 정비되어 있는 편입니다.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AT HOP card를 사고 at.govt.nz 사이트에서 카드를 등록하면, 온라인으로 쉽게 교통카드 선불 충전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