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반에 맞춰둔 알람 소리에 비몽사몽 눈을 뜨자 열기구 투어가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불행한 소식이었지만 내심 안도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국제선, 국내선, 셔틀버스를 차례로 이용하여 괴레메 마을에 도착한 것이 바로 그 날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가면 체력이 좋아지는 편이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느지막이 깨어나 다음 날로 벌룬 투어를 다시 예약하고 한가로운 오후의 마을을 거닐기 시작했다. 5월의 터키는 푸르고 따가웠다.
이튿날 새벽 다시 알람이 울렸다. 이번에는 픽업 차량을 안내하는 긍정적인 연락이 와있었다. 아직 새까맣기만 한 새벽,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판에 모였다. 색색깔의 커다란 풍선들은 영지를 지키다 쓰러져 잠이 든 짐승처럼 축 늘어진 채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새벽과 아침의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는 동안 커다란 짐승들이 깨어난다. 연료통을 실은 트럭이 지나가며 불을 붙이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커다란 화염과 함께 풍선이 부풀었다. 들판에 모인 사람들 중 십여 명과 함께 커다란 열기구에 오르자 고정 장치가 풀리며 흔들흔들 몸이 떠올랐다. 눈 앞에 보이던 들판이 점점 멀어지면서 괴레메의 풍경이 발 밑에 깔리기 시작했다.
괴레메는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암석인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사람들은 쉽게 부스러지는 이 암석들에 구멍을 내어 독특한 동굴 형태의 집이나 종교시설을 만들었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 각각은 동물 같기도 하고 나무나 구름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땅에서 멀어질수록 미로처럼 얽힌 개미집으로 보였다. 보는 사람들마다 제각기 다른 서술어를 사용해 기묘한 괴레메의 암석들을 표현하리라.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열기구의 위치가 바뀌면서괴레메의 암석들은 분홍색으로, 주황색으로, 또는 상아색이나 노란색으로 시시각각 다양한 빛을 내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추상화처럼 파스텔톤 색깔들이 잠에서 깨어나 움직였다. 빛으로 춤추는 마을 위로 거대한 풍선들이 파티장의 종이꽃가루처럼 흩날렸다. 내가 탈 열기구가 아니길 바랬던 칙칙한 회색 풍선조차 존재감을 드러내며 쨍하게 빛났다. 마을 전체가 살아 있었다.
열두 번째 과학 유람, 분자 운동
열기구의 커다란 풍선 속에는 공기가 가득 차 분자 운동을 하고 있다. 모든 물체를 이루는 분자들은 운동 에너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단단한 고체를 이루는 분자들도 제자리에서 약한 진동 운동을 하고 있다. 풍선 속의 공기와 같은 기체 분자들은 서로 끌어 당기는 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시적으로 보여질 만큼 자유롭게 운동을 한다. 어떤 집에서 끓이는 라면 냄새가 복도 전체에 퍼진 것을 맡은 적이 있다면 기체 분자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현상을 확인한 것이다.
기체 분자의 평균 운동 에너지는 온도에 정비례해 증가한다. 더운 여름에 냄새가 더 빨리 퍼지는 것도 온도가 높아지면 분자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빠르게 움직이는 기체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기체의 부피가 커지게 된다. 열기구에 불을 붙이면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풍선이 팽팽한 것은 뜨겁게 가열된 기체 분자들이 활발하게 운동하면서 풍선 벽에 부딪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기체 분자 일부가 풍선 밖으로 빠져나간다. 풍선 속 기체 분자의 수가 줄어들어 밀도가 작아진 풍선은 하늘 높이 떠오르게 된다. 반대로 열기구의 불을 끄면 기체 분자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고, 바깥의 기체가 풍선 속으로 들어오면서 밀도가 커져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열기구의 불을 조절하면서 마을의 새벽 파티에 동참했다. 불이 꺼지면 암석 가까이 내려간다. 곳곳에 뚫린 동굴 안에 누가 살고 있나 보일 정도로 암석들이 다가온다. 닿을까 불안해질 때쯤이면 열기구 바구니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매혹적인 마을을 바라보는 등허리 뒤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다시 파티장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춤추는 종이 꽃가루가 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