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카포의 숙소는 완벽했다. 뉴질랜드 전역에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모두가 테카포 지점을 최고로 꼽았다. 2층 로비에 딸린 테라스에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면 옥빛 호수와 잔디가 보였고, 호수 건너 먼 거리에는 빙하를 얹고 있는 산이 배경으로 깔렸다. 종일 아무런 일정 없이 테라스에 누워만 있어도 지루할 틈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밤에는 숙소 앞 어디서든 등을 대고 누우면 은하수가 보였다. 테카포의 잔디밭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뉴질랜드에 있는 누구든 같은 별자리를 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감성적이 되곤 했다.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V를 처음 만났을 때는 테카포까지의 일정을 함께 할 줄 몰랐다. 스테이크를 나누어 먹기 위해 만난 동행자였는데, 호숫가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썬 다음에 자연스레 호수 위의 별을 보게 되었다.퀸스타운은 번화한 축에 속하는 도시였는데도 가로등아래만 벗어나면 별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오리온자리와 남십자자리, 각자의 별자리인 쌍둥이자리와 황소자리를 찾아 밤하늘을 헤맸다. 가로등이 없는 곳에는 나무들이 머리 위를 가리고 있어서 별과 별을 이어 보기 어려웠다. 하늘을 빼곡히 채운 별들을 가득 품고 싶어 갈증이 났다. 테카포로 가야만 했다. 뉴질랜드 곳곳의 기념품 상점에서 테카포의 은하수 사진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V는 퀸스타운을 떠나 푸카키 호수로 갈 예정이었고, 푸카키에서 조금 떨어진 테카포까지 나를 데려다준다고 했다. 우리는 테카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천문대에서 핫초코를 마시고, 푸카키 호수의 명물인 연어회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로는 푸카키에 갈 수 없기 때문에 V가 아니었다면 뚜벅이인 나는 빙하가 녹은 푸카키 호수의 신비로운 빛깔과 그곳에서 살아낸 연어의 맛을 영영 모를 뻔했다. 부분 부분 오묘한 빛을 내는 터키석을 밀키스에 녹인다면 이런 빛깔일까. 물 언저리에 맞닿아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빛이 붉어질 때쯤 우리는 호숫가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열 번째 과학 유람, 남반구의 별자리
어둠이 깔린 테카포의 잔디 위에 혼자 남아서, 흐릿하게 흩뿌려진 은하수 사이로 빛나는 남십자자리를 찾았다. 남십자자리는 네 개의 별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는 별자리로, 십자가의 세로축을 연결하면 천구의 남극 쪽을 가리킨다. 십자가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에는 밝은 별이 없기 때문에 아래로 길쭉한 다이아몬드의 네 꼭지점을 상상하면 된다. 그 다이아몬드의 오른쪽 아랫변 중간에 애매하게 밝은 별이 하나 보인다면 남십자자리를 정확하게 찾은 것이다. 천구의 남극 부근에는 눈에 띌 만한 별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남십자자리가 남반구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북위 33도 이남에서만 관측할 수 있기에 북위 37도인 우리나라의 밤하늘을 아무리 헤매어도 찾을 수 없는 별자리이다.
오리온자리도 남반구에서 새롭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오리온자리는 천구의 적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지구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북반구에서 보던 모습과 다르게 뉴질랜드에서 바라본 오리온은 위아래가 뒤집어져 물구나무 하듯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오리온자리는 머리, 양 어깨, 양 무릎을 형상화하는 별들과 함께 허리 부근에 배열된 세 개의 별이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별자리이다. 겉보기 등급이 밝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서울 하늘에서도 오리온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허리춤을 차지하고 있는 삼태성 아래쪽으로 칼처럼 늘어진 몇 개의 별과 성운을 볼수 있다. 별이 형성되기 전의 먼지 구름을 성운이라고 하는데 오리온자리에 있는 성운은 별만큼이나 밝게 보여서 과학자들은 오리온 성운을 이용해 별의 탄생 과정을 연구했다.
테카포에서 바라본 하늘에서는 오리온 허리에 해당하는 삼태성 위쪽으로 높이 치켜세운 칼처럼 오리온성운이 빛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올려다보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하늘이었다. 남반구의 밤하늘 아래에서 똑같은 모습의 별자리를 보고 있을 이들과 가까이 닿아 있는 듯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