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피날레는 신랑 신부의 행진이다. 새로운 부부는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음에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결혼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뭐든 쟁여 놓는 것을 좋아한다. 달랑 둘이 살면서 생필품도 식품도 박스 째로 사들인다.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은 무적이 되는 줄 아는 엄마랑 똑 닮은 사람과 결혼할 줄이야.
엄마 집에서 냉장고나 창고 문을 열면 쌓여 있던 물건이 뚝 떨어지곤 했다. 기억도 못 할 물건들이 창고에 겹겹이 쌓이는 것도 싫고, 냉장고에 음식 냄새가 뒤섞이는 것도, 오래 묵은 음식을 먹는 것도 싫었다. 독립한 후 무(無)에 가까운 자취방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는데, 이번엔 남편이 수납장과 냉장고가 가득 차 있어야 안정되는 사람이었다.
남편도 당연히 이유는 있다. 대량 주문을 했을 때 가격이 더 싸고, 한 번에 주문하는 게 편하고, 필요한 물건이 똑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이유다. 반대로 나는 물건이 쌓이는 게 불안하다. 우리 집 수납장에 무엇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있어도 못 쓰다 버리는 것들만 늘어난다. 냉장고와 냉동고에 들어간 것들이 많아지면, 신선하지 못한 음식을 먹게 되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뒤섞인 냄새만 맡게 될 뿐이다. 콩만 한 신혼집에 택배가 올 때마다, 어머님이 반찬을 주실 때마다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더 큰 문제는 서로의 다름에 대한 소통 방식을 완벽하게 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갈등 상황을 피하며 말을 아끼는 사람이고, 나는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수면 위에 올려놓고 말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남편의 방식으로 참고 배려하는 것은 나에게 배려가 아니었고, 내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남편에게 해결이 아니었다.
무수한 갈등 끝에 남편이 조금씩 천천히 변해주었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그런 말들을 의식적으로 나누려 노력하고, 생각을 표현하려고, 또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사람이 변화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나 또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작은 변화도 고마운 것이다.
"지혜로운 부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싶지만, 사실 우리의 다툼과 화해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날은 결혼하길 잘했다 싶다가도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화딱지가 난다. 하지만 상처를 주고받으며 엉엉 울다가도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리고 가벼운 장난에 웃음이 난다. 항상 화창할 수는 없어도 자주 해가 뜬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우리는 수백 개의 무지개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