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 낳는 법이 통했을까

임신 16주 차

by 여행하는 과학쌤

딸이다! 4주 만에 간 병원에서 들은 소식이다. 남편은 이미 남자 조카만 네 명이고, 나는 직장에서 만난 사춘기 남자 아이들에 질려 버려서, 내 자식으로 여자 아이 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아이가 딸이라고 진작부터 믿고 있었다. X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Y 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생존 기간이 길다는 과학적 근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란일 한참 전부터 정자가 난자를 기다리고 있어야 딸이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예외 투성이고 변수가 많다.


음파를 확인했어도 여전히 불안하다. 오늘은 내내 다리를 므리고 있어서, 딸일 가능성이 크긴 지만 다음에 다시 봐주겠다고 애매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16주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한 성별이 나중에 바뀐 사례를 검색해 보니 수두룩하게 나왔다. 딸인 줄 알았는데 아들인 경우도, 아들인 줄 알았다가 딸로 바뀐 경우도, 또는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경우도 있었다. 아기가 자세를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고, 탯줄에 가려질 수도 있다. 초음파 영상을 보는 그 순간, 적절한 각도를 딱 맞게 관찰하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 당연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살피고 키운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뭐 하나 온전히 내 뜻대로 굴러가 않는 생명체들에게 거꾸로 내 삶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생물학과 실험실에서 뼈저리게 느끼고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바 있다.


사람 한 명을 길러내는 것은 실험실의 생명체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아마도 그것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초음파로 얼핏 보이는 얼굴이 땡그랗고 코가 오똑한 것이 벌써 예쁜 얼굴로 보여서 고슴도치맘이 된 것 같았다.


태아의 성별은 수정되는 순간 결정된다. 여자의 체세포는 상염색체 22쌍(44개)과 1쌍(2개)의 X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남자의 체세포는 상염색체 22쌍과 X 염색체 1개, Y 염색체 1개를 가지고 있다. 난자나 정자를 만들 때 23쌍의 염색체 중 절반이 랜덤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정자에는 X 염색체가 있을 수도 있고 Y 염색체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정자가 난자와 수정되느냐에 따라 태어날 아기의 성별이 결정된다. 12주 무렵까지 남녀 모두 생식기가 살짝 돌출되어 초음파 영상으로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후 남자아이는 돌출된 구조가 길어지고, 여자 아이는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육안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태동인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