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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Feb 07. 2018

기본의 쓴 맛, 프로젝트팀에 참여하기까지

데이터와 사람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

지난 이야기

뭐 먹고 살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데이터'가 떠올랐다. 내 역량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와 '네트워크', 그 중 네트워크를 좀 더 정량적으로, 전략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다 떠올린 결과다. 물론 태생 문과에 10년 전 대학교에서 기초 통계학 1년 배운게 내가 아는 데이터과학의 전부다. 그래도 뭔가 자신감은 있었다. 기자밥 3년 넘게 먹으면서 꽤 많은 개발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쭉 강조했던 것도 데이터였는데, 설마 그것 하나 이해 못하겠는가. 게다가 기본이론 아닌가. 그렇게 얼리버드(Earlybird) 데이터사이언스 기본이론팀에 35만원을 투하했다.

패기있게 시작한 데이터과학. 얼리버드 운영진을 만나 고기도 얻어 먹었다. 공짜 고기에 술까지 달아오르니 분위기는 진득해진다. 울분에 찬 포부를 뱉어낸다.


내 기사가 분명 어딘가에 영향을 주는 것 같긴 하거든? 주변 보면 기사 뜬 다음에 고객 연락이 늘어났다던가, 컨설팅 용역을 받았다던가 뭐 이런 이야기도 들려. 근데, 우리가 기사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지표는 '트래픽' 하나밖에 없어. 사실 트래픽 높다고 좋은 기사는 아니라고 보거든. 누군가의 말처럼 고양이 사진 올리면 어느 택배업체 망한 이야기보다 트래픽은 훨씬 잘 나올 수 있잖아. 근데 별다른 방법을 모르니 그냥 트래픽만 보는거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나에게 데이터과학이란 이런 것이었다. 뭔가 알기만 하면 기적같은 해결책이 뚝뚝 떨어지는. 우리 매체의 필진인 모대학교의 교수 한 분도 "데이터가 물류의 미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데이터를 배우면 나에게도 그 미래가 보이지 않겠나.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올라서 이런 말도 덧붙였던 것 같다.


첫 번째 수업 커리큘럼 살짝 봤는데 별거 없더라. 확률? 분포? 그거 동전 던지고 뒷면 얼마나 나오는지 보는거 아니야. 회귀분석? 대학교 다닐 때 기초는 다 뗐지.


별거 있더라. 기본이론팀 참가자들에게 첫 과제로 주어진 것은 코세라(Coursera)에서 기초 통계(Basic Statistics) 강좌를 보고 자유롭게 정리하는 것. 이 얼리버드라는 곳은 '의지'를(정확히 말하면 의지도) 판매하는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다. 매주 과제를 제출하고 스터디 당일 출석을 하면 3만원을 통장에 당일 입금해준다. 과제와 스터디 참석, 둘 중 하나라도 안 지켜지면 3만원은 들어오지 않는다.

기본이론팀 스터디 진행방식. MOOC 강연을 큐레이션하여 기본 학습도구로 사용하며, 공동 학습과 토론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자료: 얼리버드)


일견 이해가 된다. 과거 학교에서 들었던 인강의 추억이 떠오른다. 매주 강연을 켜서 일정 시간(40분 강의면 30분) 듣지 않으면, 출석체크가 안된다. 억지로라도 들어야 되는데, 난 안 들었다. 인강은 켜놓기만 하고, 열심히 다른 짓을 했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명교수가 하는 코세라의 데이터과학 강좌라 해도 인강이기에 이런 짓거리는 허용된다. 더욱이 코세라는 일정 시간 켜놓지 않으면 출석체크가 안된다는 등의 제약도 없다.

이런 분들이 강연을 하는데 공짜다. 언젠가 기업가정신 수업에서 처음 들었던 용어 무크(MOOC)는 그렇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얼리버드는 '돈'과 '과제'를 제약으로 걸었다. 여기에 더해 스터디에 참가하는 인원중 매주 발제자가 선정되는데, 이 발제자는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그 주 스터디에 참여하는 인원들에게 발표해야 한다. 발제자의 발표를 듣고, 스터디 참여자들은 서로 궁금한 것을 논의하면서 심화 학습한다. 발제자로 선정된다면 쪽팔려서라도 무엇인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구조다.


기본을 우습게 본 자 망할지어니


난 그걸 꽤나 만만하게 봤다. 스터디해야 할 강연의 분량을 보니 대략 3시간 짜리. 하루 벼락치기 해도 충분히 공부할만한 양인 것 같았다. 게다가 기초 통계학은 이미 다 배웠다는 오만도 있었다. 공부해야 할 커리큘럼의 대주제인 상관관계와 회귀분석(Correlation & Regression), 확률(Probability), 확률분포(Probability Distributions) 모두 배웠던 내용이고, 학점도 꽤 좋았다.

첫주차 학습내용. 영어가 압박이긴 하지만, 이미 배웠던 거다. 별거 아니다. 실제 강의를 듣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게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초 중에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분산이라던가, 표준편차라던가... 이런 것들조차 어떻게 계산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기초부터 공부해야 했는데, 코세라의 강의는 말그대로 '핵심'만 빠르게 훑었다. 그러니까 30분 짜리 강연을 들었다 했을 때, 설명이 안된 용어를 찾아 공부하고, 다시 강연을 이해하고, 강좌에서 주어진 예제까지 풀고 하면 어느덧 2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영어도 압박으로 다가왔다.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강의를 영어자막만으로 소화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10년 전 공부했던 '켈러의 경영경제통계학'이라는 대학교재를 다시 펼쳤을까.

얼마만에 꺼낸 전공서인가.


결국 토요일부터 일요일 스터디 당일까지 환상적인 벼락치기를 계획했던 난 제대로 망했다. 할당된 공부량의 초반부는 그나마 이해하며 천천히 봤다. 그러나 시간에 쫒긴 막바지에 이르러선 그저 영상을 틀고, 그 내용을 '아 그런가보다' 하면서 듣고, 과제를 위한 필기만 하면서 넘어갔다. 당연히 과제의 퀄리티가 좋을 수 없었고, 나한테 남는 것도 없었다. 이건 공부를 위한 과제가 아니라 3만원을 위한 과제를 한거다.


이론보단 실전이지, 아무렴


더욱이 큰 문제는 내가 지금 표준편차랑 분산 공식을 다시 외우고, 표준정규본포표를 뒤집어 보면서 대체 뭐에 써먹을까 하는 괴리에서 나타났다. 나는 이 강연을 듣기 전에 "데이터를 통해 네트워크를 잘 만드는 법을 알아보자"는 포부를 밝혔는데, 이론으로는 도무지 그 방법에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솔직히 말하면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다. 월말이면 찾아오는 마감 압박에 매주 이것까지 제대로 하려면... 끔찍하다.)


그러고 보니 얼리버드에는 '프로젝트팀'이라는 게 있었다.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며 배우고 싶은 사람, 다른 사람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쌓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또 학습을 할 때 이론부터 공부하기 보다 실제 활용을 통해 학습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단다.


왜 이걸 이제 봤을까... "난 데이터과학을 모르니 당연히 기본이론이지"라고 아무 생각없이 신청했던 나를 원망했다. 같이 이 강의를 신청했다가, 왠지 모르게 사라져 있던 후배기자 모씨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팀 스터디 진행방식. 실전은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자료: 얼리버드)


그렇게 일요일 오후 2시 나는 기본이론팀 첫 스터디에 참여했다. 그리고정식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거기서 만난 얼리버드팀 운영진에게 먼저 이런 말을 했다.


나 이거 못하겠다. 프로젝트팀으로 바꿔줘.

 

이론성애자인 한 친구로부터 "기본이론을 알아야 큰 걸 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내 의지를 꺾진 못했다. 오후 4시에 프로젝트팀 첫 스터디가 이어지니 그 때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당일 각자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짤막하게 발표해야 된다고 한다. 이렇게 발표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관심사를 기반으로 사람이 모여 '팀'이 만들어진다. 시간 얼마 없는데 준비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따라 들어온다.


그래 이거다! 내가 데이터는 잘 모르지만, 데이터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명확하다. 좋은 조직문화가 실제 성과로 연결되는가. 그렇다면 실제 성과로 연결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데이터를 사용할 것이다. 코딩이나 알고리즘은 모른다. 근데 프로젝트팀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개를 쭉 둘어보니 태반이 개발자다. 훌륭하게 얹혀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데이터와 사람에 대한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계속)

(연재) 물류기자의 데이터사이언스 도전기
Special Thanks : 얼리버드 프로젝트팀(엄지용, 이인영, 김진, 양동욱)

0. '얼리버드'가 무엇인고 하니
1. 물류기자의 데이터사이언스 도전기
2. 기본의 쓴 맛, 프로젝트팀에 참여하기까지
3. HR프로젝트팀 발족 "무엇이 공무원의 성과를 이끄는가"
4. 데이터로 공무원의 성과를 만드는 동기요소 찾기
5. 퇴사는 기업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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