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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May 12. 2023

귀엽고 무서운 오리 택배 이야기

택배 취급금지 품목과 회색 영역

얼마 전 지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아주 귀여운 사진 하나를 봤습니다. 쌓여있는 수많은 스티로폼, 종이 박스들을 보면 분명히 택배차 탑칸 안인데요. 얼기설기 투명 테이프로 포장(?)된 사과박스 안에는, 테이프 틈을 비집고 예쁜 오리 얼굴이 삐죽 나와 있습니다. 합성이 아니라면, 이건 분명 살아있는 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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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똘망똘망한 오리가 택배차 탑칸 안에 포장(?!)돼있다. ⓒ에펨코리아

사실 이건 매우 무서운 사진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오리가 택배의 통상적인 허브앤스포크 프로세스를 통과한다면요. 박스로 들어차 와르르 쏟아지는 간선 상하차와 허브터미널에서 고속 분류되는 자동화 소터(Sorter)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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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백암 허브터미널에 설치된 휠소터의 모습. 위 오리가 담긴 박스가 저기 올라가서 소터에 분류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무사할 수 있을까. ⓒ커넥터스

물론 정상적인 경우라면 살아있는 오리 택배는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살아있는 동식물’은 5대 택배사(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우체국, 로젠) 모두가 택배 취급금지 품목으로 설정해뒀고요. 그 이전에 저렇게 모가지가 튀어나온 채 포장된 오리 박스를 택배기사가 ‘집하’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택배기사가 동네 친구에게 부탁받아서 옆 동네로 오리 직배송을 의뢰받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한진택배 취급금지 품목에 포함된 살아있는 동식물과 사체류. 한진뿐만 아니라 모든 택배사에서 살았든 죽었든 ‘동식물’ 배송은 불가능하다 고시하고 있다. ⓒ한진

더군다나 한국법상 ‘동물운송’은 지정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심사받은 사업자만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운송되는 동물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차량구조, 운영방법 등에 있어 세부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고요.      


예컨대 동물운송 차량은 이동 중 동물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야 되고, 적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운송중 동물이 상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야 합니다. 동물 운송과 관련된 준수사항을 위반한다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요.     


그런데 택배차에는 동물운송을 위한 설비가 마련돼있지 않죠? 그래서인지 한국 정부(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택배 표준약관을 보더라도 제6조(송화인의 의무), 제12조(운송물의 수탁거절)에 따라 동물은 모두 배송금지 품목으로 명기돼있습니다. 약관에 따르면 송화인은 택배로 동물을 보내면 안되고요. 운송업체 역시 동물 배송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암흑’의 영역이 있습니다. 실제 오픈마켓을 조금만 뒤져보더라도 ‘파충류’나 ‘곤충’, 심지어 햄스터 같은 작은 ‘포유류’까지 택배로 보내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앞서 오리 택배 사례처럼 머리만 삐죽 튀어나오는 포장 같지 않은 포장이 아니라 꼼꼼하게 밀봉해서 배송되기 때문에 택배기사 집하 과정에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송장에 기입해야 하는 카테고리 역시 적당히 아무렇게 쓰면 그만이고, 사실 대놓고 ‘생물’이라 쓰더라도 바쁜 택배현장에서 이걸 일일이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암암리(?) 택배로 배송되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꽤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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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연히 떠오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요. 마켓컬리 같은 신선식품 커머스 업체들의 흔한 ‘활전복’ 배송은 불법일까요? 마켓컬리는 산지 채취부터 고객 전달까지 불과 하루를 넘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로 배송하는 전복 상품을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몇 년 전 저와 인터뷰한 김슬아 컬리 대표는 활전복이 살아있는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는 계류시간은 불과 ‘6시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적도 있고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먹기 위한’ 활전복은 동물운송 규정과 상관없이 택배 배송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보호법 2조(정의)는 동물의 범위를 정의하고 있는데요. 한국법상 포유류, 조류는 모두 동물이고요. 파충류와 양서류, 어류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부 동물만 ‘동물’로 규정하거든요. 이중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동물이 아니라고 하네요.     


사실 오늘 커넥트레터는 ‘귀엽고도 무서운 오리 배송의 비밀’을 주제로 작성하려고 했는데요. 관련하여 택배업계 관계자들에게 연락하여 취재하던 중, 어떤 분이 “그거 이미 기사 나왔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택배차에 넣어둔 오리는 ‘배송’을 위한 목적의 오리가 아니었고요. 그냥 오리가 풀숲에서 걸어 나오길래, 줍줍해서 상자 안에 넣어둔 것이라 하네요.(이건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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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슈파이팅은 기존 언론사를 쫒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오리 배송 취재를 정리하여 올려봤자 쉰 떡밥이라 전 망했지만, 기왕 조사해둔 것이 아까워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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