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유신 Scott Park Nov 05. 2020

내게 가장 소중한 것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그중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에 대해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러면 어떨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적어놓은 다음, '이 중에서 꼭 하나를 지워야 한다면 뭐를 지울까'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차례차례 하나씩 지워나간다. 


내게 소중한 것을 적어본다. 여행, 모험, 책, 글쓰기, 커피, 와인, 마라톤, 가족, 친구.


이 9개 중 하나를 지워야만 한다. 어릴 적 읽은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떠오른다. 모험을 떠날 때의 설레임, 새로운 상황에서의 긴장감과 손에 배이는 땀, 모험을 마친 후의 쾌감 중의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안고 '모험'을 지운다. 


이제 하나 더 지워보자. 아직 8개나 남았는데 벌써 어렵다. 친한 사람들과의 자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것, 달리기로 땀을 흠뻑 흘린후 샤워를 하고 나서 즐기는 것. 바로 와인이다. 손에 쥔 와인 잔을 놓고 싶지 않다. 역시 아쉽지만 지운다. 


낯선 곳에서의 설레임, 우리네 할머니처럼 인정 많은 수블라키 가게 그리스 할머니, 바가지를 씌워 꼴 보기 싫었던 터키 운전사 아저씨, 환한 웃음이 매력적이었던 친절한 인도네시아 아가씨 등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느린 호흡으로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 눈물을 머금고 '여행'에 줄을 긋는다.  


이제 남은 것은 책, 글쓰기, 커피, 마라톤, 가족, 친구


그래 결심했어. 커피를 지우자. 매일 아침 여유롭게 마시는 진한 향의 플랫 화이트가 없다면 어떻게 살지? 커피가 없다면 친한 사람들과 뭘 마셔야 하지? 


남은 것들 중에 손을 떨면서 글쓰기를 지운다. 나에게 글쓰기는 나 자신과 또 남과의 소통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를 위해 함께 가는 동반자. 글쓰기가 없는 삶, 가슴이 아려온다. 


다음으로는 책을 지운다. 매일매일 읽어온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니..... 


이제 남은 3가지는 마라톤, 가족, 친구. 


마라톤을 포기하자. 대신 등산이나 싸이클링을 하면 되는 걸까? 


가족과 친구,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잔인한 질문이다. 어쨌든 규칙은 규칙이니,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딱 하나는 가족.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가족을 가장 소중하다고 꼽았지만, 찬찬히 되돌아보면 내 가족은 당연히 항상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당연한 존재. 만약 오늘 교통사고가 나서 내 가족 모두가 저 세상으로 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오늘 퇴근해서 아내에게는 뽀뽀를 하고, 딸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져야겠다.



예전에 썼던 글을 위와 같이 퇴고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재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