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훈 Jan 08. 2019

살이 쪘다

결혼하고 나서 나에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일상적으로도 그렇고 말이다.

일단 살이 많이 쪘다. 살다살다 지금이 가장 돼지다. 나 어릴 때 빼빼 마르고 피부도 하애서 약간 어린왕자느낌이었는데 이렇게 뱃단지솥단지 나온 아재가 될꺼라곤 전혀 생각 못했다. 와이프랑 난 둘다 맞벌이를 한다. 처음에 결혼하고 집을 얻고 나선 요리 책도 여러 권 샀고, 둘이 이것저것 요리하면서 깨볶고 사랑볶는 키친 라이프를 살려고 계획했었다. 근데, 살다보니 지내다보니 외식이 그렇게 맛있더라. 음식점 사장님들 정말 치열하게 사시는 듯 하다. 존나 맛있다.

집에서 날잡고 요리 한번 할라치면 왜캐 귀찮고 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요리를 하고 난 주로 설거지를 하고 짬을 버리는데, 설거지는 참 귀찮다. 그래서 저녁마다 외식을 했다. 아내는 하루 한끼를 먹는데, 그게 저녁이었고, 일 고단하게 하고 와서 먹는 거라도 잘 챙겨먹어야했기에 육류 위주로 삼겹살, 치킨, 소고기, 곱창을 주로 사먹었다. 어느 시점부턴가 내 머릿 속엔 고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찼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낭만과 멋과 의미를 찾아야 하는 내가 점점 삼겹살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머릿 속엔 항상 고기생각뿐이었고, 맨날 사먹었다. 원래 살이 안쪘기에 난 아무리 먹어도 체형대로 가는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돼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혼 이후 6개월 정도 경과했을까? 찜질방을 갔는데 몸무게를 재보고 처음 보는 숫자에 적잖이 당황했다.

목욕탕엔 나말고도 다른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체형을 눈여겨 보았다. 다들 비슷한 체형들이었는데, 대체적으로 펑퍼짐한 배, 혹은 약간의 수줍은 배를 가지고 있었고, 공통적으로는 얇은 다리로 를 힘겹게 버티는 모양이었다. 근육질은 진짜 한명도 없었다. 헬스장 몸 좋은 사람들은 찜질방 안다니나보다.

젠장. 5년 전만하더라도 홍대를 다니면서 여기저기 헌팅, 클럽을 주구장창 다녔던 내가 이렇게 점점 얼굴이 동글동글해지고, 몸이 뚱글뚱글해지는 전형적인 아재가 되갈줄이야... 나라고 뭐 특별한 사람은 아니니깐.

얼마 전에 아내랑 싸운 일이 있었다. 마음에 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아내가 내뱉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 오빠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맨날 잠만 자려하고, 정말 자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애!"


처음에 난 얘가 무슨 말을 하나 했다. 잠자는 게 뭐가 어떻다는 건지?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건지?

며칠동안 아내가 한말이 계속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내가 집에서 잠만 잔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난 지금 내가 사는 이 집이 너무 좋다. 사실 이십대초반에 처음으로 고향 여수에서 서울로 상경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 하나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거처가 딱히 마련되진 않은 상태였다. 물론 내 꿈을 위해서 올라온 거였기에 내가 스스로 모든 경제적 문제를 해결 했어야 했는데, 그런 무일푼의 이십대초반의 청년에게 무슨 능력이 있었겠는가? 선택지가 많이 없었고 월세가 그나마 싼 구로동 고시원에서 오랜 기간 거주했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삼사년 전까지도 사실 고시원생활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부부의 이름으로 공공임대주택에 당첨이 되고, 그때서야 아버지한테서 처음으로 집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스스로 집 문제를 해결 했어야 했는데, 그런 능력까지 미쳐 닿지 않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여튼 처음으로 집 같은 집에서 아내와 사는건데, 집돌이가 되버렸다. 집에서 먹고, 쉬고, 놀고, 책 보고, 자고하는 그 단순한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친구도 잘 안만났다. 운동은 원래 싫어했다. 아재가 되다보니, 행복 멀리서 안 찾게 되더라. 의미와 목표를 이루는 열정의 순간보다, 그냥 지금 낮잠 자는 순간의 쾌락을 즐기게 되었다. 당장의 피로가 풀리는 그런 순간들을 즐기게 되었다. 점점 돼지가 되어가는 건가?

명절에 큰집 형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는 유부남이 되면 왜 살이 찌는가? 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형의 이야기가 맞는 듯 하다.


" 나이 먹으면, 어느 정도 삶이 예상이 되잖아!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것에는 움직이지 않아! "


맞다. 쓸데없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다. 나이와 세월이 주는 예측 범위가 생긴다는 이야기 일것이다. 그래서 좀 고민이다. 편안한 건 분명 젊었을때보다 편해졌는데, 열정이 많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쓸데없더라도 많이 움직이고, 사람 만나고, 넘어지고, 토하고 했었던 이십대가 난 그리운 걸까?

작가의 이전글 아내의 신비한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