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무원도 철밥통일까?

by Scribblie

겁나게 궁금했다. 영국 공무원도 철밥통인지 말이다.


2년간 있기로 하고 갔던 나의 사원증에는 Temporary라고 떡하니 찍혀있었다. 그럼 Permanent도 있겠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할 때 슬쩍 보니 Permanent도 있었다. 이게 개인 신상에 해당되는 일이다 보니, "너 정규직이야? 계약직이야?"하고 묻는 게 쉽지 않았다.

영국 직장도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체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둘은 친했다. 그 둘 중 하나가 다른 구청으로 떠나게 되었다.

보통 다른 구청으로 가게 되면 떠남을 알리는 메일을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쭉 돌린다.

Leaving RBK

"킹스턴을 떠나며"라는, 저 제목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이메일은 보지 못했다. 문득,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라는 진탕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가 생각난다니, 내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입증이라도 하는 것 같다. 작별인사 이메일 안에는 승진해서 떠나는 경우 자랑과 으슥함이 가득한 경우도 있었다. 바로 저 둘 중 하나가 떠날 때 그랬다. 그때서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승진해서 떠난다?"는 말이 한국 공무원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된다. 공채해서 전보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 영국의 공무원은 우리와는 채용방식이 다르다. 우리처럼 공채로 국가에서 단체로 뽑아서 평생 일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기업처럼 2년 단위의 계약을 하는 것이 영국의 공무원이다. 그래도 공채나 공고는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킹스턴은 사람이 나가기만 하고 6개월에서 1년 이상 사람이 채워지지 않는 자리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가급적 내부에서 먼저 공고해서 사람을 뽑고, 회의 시간에 "좋은 사람 없어?"라며 1차적으로 인맥으로 사람을 뽑았다. 그래도 사람이 없으면 대외로 공고를 냈다.

공무원이라는 공공적 일자리도 알음알음으로 채워진다고?

이 시점에서 너무 놀랐던 것이다. 대체 공공 일자리마저도 네트웍으로 채워진다면 빽도 뭣도 없는 사람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은 대체 어디서 직업을 구하고, 기회 균등의 채용은 어디서 이루어진단 말인가?!

그러니 이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네트워킹은 정말 처절하고 치열한 것이었다. 연말이 다가왔는데, 다들 다른 구청으로 떠나고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What's app에 단톡을 만들어 연말 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이게 뭔가 싶었지만,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1년 전 떠난 프랑스인 L은 이제 1년이 남았으니 이적지를 탐색해야 했을 것 같고, 아는 사람들을 모아 채용소식을 들을 네트워킹 기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LinkedIn은 늘 뜨거울 수밖에.

그렇다면, Temporary는 그렇다 치고 Permanent는 정규직이고 종신직 아닐까? 이것도 차마 막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나를 Hun(Honey)이라고 불러줬던 T가 Permanent 자리로 이번에 가게 되었다고 기뻐할 때 "너무 축하해~"라고 하면서 물어봤다.

아.니.란.다. 본인이 평생직인 게 아니라, 그 포지션이 평생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일시적 프로젝라 프로젝트가 사라지면 사라질 수도 있는 포지션은 Temporary인 것이고, 나는 어찌 되든 간에 그 자리는 이 조직에서 영원한 경우 Permanent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그 보직이 Permanent이면 그나마 고용의 안정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짠했다, 영국의 고용인들이. 우리의 작은 회사들의 고용 안정성보다도 영국의 공무원 고용안정성이 떨어져 보였다.



그렇다면, 입사 문턱이 낮거나 대우가 좋은 직업일까?


공무원의 학력 수준은, 내가 아는 한 도시나 건축분야 석박사가 보통이었다. 얼마나 오버스펙인가 싶기도 하다. 시각을 바꾸어보면, 석박사 정도 하지 않으면 연봉이 높지도 않은 공무원 조차도 채용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혹은 정말 그 일에 사명감이 있거나 말이다.

공무원 초임은 얼마일까? 3,500만원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사내 채용공고들을 보면서 경력에 따른 Grade와 연봉등급을 볼 수 있었고 2년이 끝날 무렵 나에게도 어떤 공고가 떴으니 지원해보라고 해서 진지하게 지원서까지 썼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마 그들은 내가 한국에 가면 직장을 물색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원서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모든 채용은 네트워킹인 것과 같이 인보증란이 있었다. 이 기관에 누구 아는 사람이 있는지 써야 했고, 그 전 기관의 상사의 연락처도 써야 했다.

여차하면 연락해서 너란 사람 알아보겠다는 거다.
채용공고의 시작부

다시 연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석박사 이상이면서 5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 Leader급이 되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연봉이 차등적으로 35,000~50,000파운드 정도 되었다. 영국 초임은 3,500만원 정도이니, 한국 9급 공무원 연봉이 최저임금을 맞추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괜찮은 대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런던의 월세이다. 방 한칸을 빌리는데 월100만 원이면 무척 싼 편인 것을 감안하면, 연봉을 2,500만원 정도로 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박사까지 하고도 이런 연봉이라니.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생각해보니 한국 공무원에 비해서 일을 반만 하는 거 같기는 하다. 문화의 문제든 효율의 문제든 말이다. 그들이 승자인가?!) 그리고 한국처럼 연차가 지난다고 월급이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2년마다 지자체를 옮겨 다니며 몸값을 높이는 민간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페이를 높여갔다.

영국 내에서 나쁜 연봉일까? 다 같이 적게 받는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음에 답하자면, 나쁜 연봉이다. 영국에서 일은 많고 월급은 좋지 않은 나쁜 직업 중 하나가 공립학교 선생님인데, 선생님들의 연봉이 30,000파운드 정도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런던에서의 삶을 꿈꾸며 상경(?)한 웨일즈 지방이나 다른 지방의 선생님들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를 들어보기도 했다.

공무원 복지에 대한 부분이 흥미롭다(?)


우리에게도 닥쳐오고 있는 1% 저성장 시대의 미래 고용실태를 영국에서 보다.


고용의 안정성도 없고 연봉도 좋지 않은 영국 공무원을 왜 하고 있는 걸까? 한국으로 떠나올 때쯤, 그렇게 채용이 되지 않던 자리에 킹스턴대학 졸업생이 Apprentice라는 이름으로 열정 페이를 하기 시작했다. LinkedIn을 보면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녀의 프로필은 Apprentice다. 과연 그녀는 언제쯤 인턴 딱지를 떼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이런 영국 사회의 단면을 보면, 영국은 위치만 서유럽 국가일뿐 철저한 자본주의인 미국과 참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채용 기회의 공정성이라는 말은 어색할 지경이고, 부모나 집안의 백그라운드, 학벌과 학연이 훨씬 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국을 깨달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부모가 백일몽으로 영국에 살겠다고 하는 것은, 모든 짐을 아이에게 넘겨주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헬조선을 외치며 선진국 가면 고용도 계약도 더 나을 거라 상상했지만 그건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히 멀리 있는 -서양인들의 지리적 시각에서- 동쪽 어느 나라 사람의 환상일 뿐이었던가보다. 한국의 고용제도도 경제 논리 하에 점점 더 고용주 중심이 되어가는 듯해서 요즘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이미 마음을 정리하고 경험삼아 봤던 면접의 추억

그것이, 킹스턴구청 국장이었던 던컨이 한국에서 왔던 구의회 연수단에게 브리핑을 마친 나에게 이번 공채에 지원했으면 한다기에 저 서식을 다 채워 면접까지 보고도 돌아오기로 결심했던, 2년 간의 현실자각 아니었을까. 그렇게 언젠가 또 다른 기회에 "잠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이메일 제목에 Leaving RBK를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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