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날 텅 빈 사무실에서 홀로

런던 구청 일기

by Scribblie

영국은 겨울이 우기이다. 런던의 우기는 우리나라의 우기처럼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는 일은 드물고 스프레이로 뿌리듯 비가 와서 맞고 다닐 만도 했다. 그래서 런던의 겨울이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좀처럼 없어도 뼈 때리게 춥다고들 느끼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참 많이 왔다. 영국도 이렇게 비가 퍼붓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사무실이 텅~ 비어있었다.

오늘이 설마 Bank holiday는 아니지?

컴퓨터를 켜고 공유 캘린더를 확인해보니 모두들 Work from Home 그러니까 재택근무로 바뀌어 있었다. 결재도 없고, 갑자기 그렇게 재택을 선택해도 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러웠다. 우리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 일찍 더 빨리 나가야 하는 게 공무원인데. 구청에서 일했을 때는 비 오고 눈 오면 허구한 날 집구석에 들어가지 못하고 (진짜) 삽질하던 땐 '이러려고 공무원이 되었나'생각도 했지만, 그 생각도 잠시이고 비상 당번이 부당하게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길들여진 막내 노예가 쉽사리 되었다.

런던의 흔한 비 오는 풍경

거의 홀로 사무실에 앉아 생각해보았다. 이들은 왜 이리도 재택근무도 많이 하고 자유롭고, 클로에는

1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느라 안전요원 같은 형광 잠바를 입고 출근을 하고, 로버트는 비가 와도 내가 탄 버스 앞에서 길을 인도하듯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갈까. 비가 퍼붓던 날 사무실에서의 사유의 귀결은, 결국 돈이 시스템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인들이 자전거를 그토록 타는 이유는 진실로 환경과 건강을 위해 시작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 비해 많이 비싼 대중교통비가 박봉의 뭇 직장인들에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자전거를 탄다.

보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걸 상상하기엔 보도의 사정은 사람 하나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일 때가 많다. 그러니, 도로로 다닌다. 그러다 런던 시내에서 여성 한 명이 치여 죽은 일이 있어서 런던은 매년 그날을 기린다. 그리고 런던플랜에도 Go Cycle이라는 자전거길 조성 사업이 있고, 구청들도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도로와 보도의 사정이 삐까뻔적 좋지만, 선진국이 하는 사업이니 자전거길 조성 사업을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영국은 열악함을 극복하고 목숨을 보전시키려고 한 사업이지만, 한국은 덕분에 재정사업을 더 늘리며 멀쩡한 도로를 파 뒤집어 인프라가 더 훌륭해지고 있구나.


텅 빈 사무실에 빗소리가 채운 나머지 공간은, 나의 ‘아무런’ 사유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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