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정권이 바뀌면 정책을 부침개 뒤집듯 하나요

민주주의의 선구지 영국에는 삼권분립이 성숙되어 있을까?

by Scribblie

때는 2018년 영국, 2022년의 한국과 비슷한 정치적 분위기였다. 런던에서는 아직 '브렉시트, 설마 진짜 그렇게 될 줄이야'라는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었고, 그래서 당시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확실해 보였다. 선거 결과도 당연히 그럴 거라 모두들 짐작했었다. 킹스턴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맞게 중도파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인 Libdem(Liberal Demodrats)으로 정권 교체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2018년 런던 지방 선거 결과 우세 정당 지도 (빨강: 노동당, 노랑 : 민주당, 파랑 : 보수당), 좌측 하단 길쭉한 노란색 행정구역이 킹스턴.

하지만 전국의 투표 지도는 파랑으로 물들었고,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과 몇몇 지역을 빼고는 온통 파랑(보수당) 천지여서 사무실에 주변 직원들도 적잖이 놀라 보였다. 몇몇 젊은 직원들은 킹스턴이 보수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것을 정말 다행이라며 좋아하기도 하고 했다.

2019년 압도적인 파란색.


그때 한국 공무원의 궁금증은 단 한 가지였다. 민주주의의 태동인 영국은 삼권분립이 잘 될까? 정치권과는 독자적인 행정권을 갖고 있을까? 쉽고 저렴하게 이야기하자면,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있던 사업이 없어지고 중요했던 사업이 개털같이 취급받는 일은 없는 걸까? 참말로 궁금했다.


보수당이 나가고 민주당이 들어왔다는 들뜸도 잠시, 직원들은 마치 우리의 '신임관리자 업무보고'와 같이 새로 바뀌는 관리자에게 현안 업무를 보고하는 듯한 업무 개요를 작성해 모으기 시작했다. 바뀌는 정당 의원들 보고자료였다. 정권교체 덕에 만들어진 그 서류를 통해 구청 전체에 어떤 사업이 있는지 예산 편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 의회 보고를 앞두고 있었던 회의에서 국장급 던컨은 '토끼가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도록' 너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했다. 정신없이 의견들이 난립하는 걸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는 토끼에 비유하다니, 그 표현 참 귀엽고도 찰지다.

갑자기 멈췄다.

굵직한 재생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던 사업 하나가, 활발히 오가던 업무 이메일이 갑자기 뚝 끊겼다. 뭔가 미심쩍어서, 잡혀 있던 회의는 "하는 거지?"하고 마크에게 물었더니 회의적인 표정으로 "아니, 이 사업 어떻게 될지 몰라."라고 했다.

어~?? 사업이 어찌 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정권이 바뀌고 추진되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추진방향을 기존대로 할 것인지 확 바꿀 것인지 새 정권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사업 추진이 홀딩된 것이었다. 선진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었던가. 행정과 정치의 역사가 길다고 해서 삼권분립이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에 더 영향을 많이 받아 보였다. 한편으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당이 국민들에 의해 뽑히면 기존 정책사업이 아깝기는 해도 정책방향이 바뀌는 그게, 당연한 민주주의인지도 그리고 그게 민주주의의 근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사업은 오랜 시간 지연되었고 다시 추진이 되었지만 사실 상 추진 방향이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어떤 정책사업이든 그렇게 틀을 벗어날만큼 큰 진폭의 변화란 것이 쉽진 않다. 다만 경중의 순번이 바뀌어서 재정의 투입 정도가 달라지고 관심사업에서 벗어나면 추진력과 완성도에서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행정하는 입장에서는 정치의 영향으로 행정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게 안타까울 때가 많을 따름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되고 나서 세상은 더 나아졌을까?

그렇게 정권이 교체되고 수 달이 흘렀다. 보수당이 갔다고 즐거워했던 건 부르르 거품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궁금했다, 보수당 때보다 전반적인 정책 사업들이 나아졌는지. 직원들 중 가장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 주는 카시프에게 물었다. "그래서 민주당이 바뀌고 일은 더 잘 진행되는 거 같아?" "아니, 보수당일 때보다 더 못해, 오히려 결정도 더 흐리멍덩하고 뭐 하나 진전되는 게 없어. 내가 살고 있는 구는 노동당인데 담당자가 제안을 하면 '한번 해봐'하면서 피육- 피육- 추진이 얼마나 빠른지 몰라"

어? 비슷하네? 우리도 그게 좋던 나쁘던 우파는 해오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확실한 툴대로 간다는 느낌이 있고, 좌파가 집권하면 뭔가 의지가 있는 건 알겠는데 좌충우돌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고, 거 참 비슷하다. 우린 사실 노동당이 집권하는 일이 없어서 노동당이 집권하면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예산철이 왔다. 팀 회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사뭇 무거웠다. 내년이 지방분권화 재정 독립 단계고 중앙정부 예산이 끊겨서 킹스턴구의 예산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데 복지예산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 쪽 사업 예산이 줄어드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킹스턴은 재정 자립도가 좋은 편에 속하는 자치구였고, 첫 번째로 중앙정부 예산이 끊기는 자치구 중 하나였기에 그 첫 번째 물결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게다 보통 그렇듯 좌파가 집권하면 복지예산 쪽에 더 힘이 실리고 상대적으로 도시기반에 대한 예산은 줄어드는 건 영국도 다름이 없었다. 모두들 체념적인 표정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도시는 더 오래된 채로 있게 될 것 같다.


세상 사 어디나 다 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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