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넌 냉정한 런더너들처럼 이사를 가고 난 뒤부터 나를 잊었을지 몰라도. 난 잊지 않았어.
하루를 멀쩡히 살다가도, 까마득 잊었던 영국이 플래시처럼 지나가곤 한다. 그건 늘 다니던 어떤 길거리의 한 장면일 때도 있고, 어쩌다 딱 한번 갔던 곳일 때도 있고, 고양이일 때도 있고, 봄마다 배부르도록 꽃을 한가득 피우던 나무 한 그루일 때도 있다.
유독 종종 생각나며 가슴을 후비는 아이가 있다. 니콜.
그 아이는 우리의 이방인 냄새도 맡지 않았는지, 어제 만난 사람처럼 말을 걸어왔더랬다. 딸아이를 등교시키려고 아파트의 로비에 나오면 늘 로비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 아마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낯선 대기를 뚫고 훅 들어온 아이 니콜.
우리는 등하교를 할 때 니콜을 만나길 기대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엄마를 알게 되었고 그 엄마의 모습에 다소 놀랐다. 우린 니콜이 영락없는 영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니콜의 엄마는 태국인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태국인이라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널서리 선생님이라고 동네 주민을 통해 들었던 그녀의 센 느낌에 놀랐었다. 그녀는 담배도 피웠다. 우리 집에 초대했던 날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 보니 동양인은 동양인이구나 싶었다.
담배, 그래 담배. 피울 수도 있다. 해롭다는 의식이 한국보다 저조한 것 같은 유럽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하소연은, 널서리 관리인이, 자기만큼 애들을 예뻐하는 사람도 없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없는데 자신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며 하소연하였더랬다. 그래그래 하고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내심 그 널서리에 다니는 아이들뿐 아니라 니콜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차근차근 알게 된 사실들이지만, 니콜에겐 태국에서 태어난 장성한 언니가 있었고, 니콜 엄마가 없을 때는 니콜과 같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꼭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니, 니콜은 집에 혼자 있던 날이 많았을 것 같다. 니콜의 엄마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20대처럼 치장하고 나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니콜이 6년 살던 집에서 원치 않게 나가기 며칠 전에 엄마의 새 남자 친구를 볼 수 있었고, 그 트럭에 올라타는 니콜의 모습의 의미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를 보던 니콜의 마음도..
우리 집에 두세 번 놀러 왔던 니콜. 영국 아이들과 달리 종이접기를 아주 잘 알았고, 실력도 좋았다. 영국 아이라기보단 외려 미국 아이처럼 말이 많고 명랑했던 니콜. 너무 예쁜 아이라서 장차 환경과 상관없이 잘 되길 바라며,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니콜은 미국 할리우드에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어린아이구나, 그렇지 어릴 땐 그렇지... 쓸데없이 이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었다.
니콜의 아버지는 영국인이었다. 니콜의 엄마가 처음 우리 집에 방문했던 날,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니콜의 언니는 엄마가 태국에 있을 때 낳은 태국 아빠가 있고, 니콜은 니콜의 엄마가 영국에 와서 영국인과 낳은 아이였다. 물론, 니콜의 아빠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고, 니콜의 아빠는 다시 결혼한 것 같았다. 막연히 니콜의 아빠가 궁금했다. 이렇게 밝고 예쁜 아이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니콜과 알고 지낸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주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콜의 엄마는 니콜의 아빠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며 불만이 많았다. 거의 나에게 연락도 오지 않는 니콜의 엄마가 집 문제로 나에게 연락을 했을 때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그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하나도 감당이 어려운 타지 생활이었기 때문에 보이듯 안보이듯 장벽을 조심스레 쳤다. 하지만 니콜은 언제나 마음에 걸렸다.
니콜의 아버지는 딱 두 번 보았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 니콜이 동네 허름한 카페에 창을 바라본 채 중년의 영국 남자와 앉아 있는 것을 차장 밖으로 보게 되었다. 니콜의 아버지였던 것 같다. 거주 문제가 어렵게 되어 아마도 둘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침울한 표정의 니콜은 처음 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니콜의 엄마는 소셜 하우징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임대주택에 지원을 하였었고, 그것이 된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서비튼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던 날, 아파트 로비에서 니콜의 아버지와 가까이 마주치게 되었다. "당신의 딸은 정말 친절하고 얼마나 밝고 예쁜 아이인지 모른다고, 그런 딸을 가진 당신은 행운이다."라고 하마터면 말을 걸 뻔했다. 소심한 나는, 그저 니콜에게 이사를 가냐고 인사를 했을 뿐이었다.
이사를 가기 며칠 전,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니콜은 딸아이에게 줄 자신의 물건을 들고 왔었다. 파우치와 M&M처럼 생긴 계산기였다. 그 사정에 무언가까지 들고 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니콜에겐 숨겨진 재주가 있었다. 아크로바틱 선수처럼 유연한 근력이었다. 브리지 자세에서 그대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까지 있었다. 재주가 아까웠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그보다 안타까운 일이 그날 있었다. 아이 둘이 놀고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뭘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I don't care라고 이야기를 했다. 니콜이 약간 슬픈 얼굴로 Yes, your mum just cares of you.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이 이야기를 무마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지나가버렸다. 아니,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그리고 니콜을 두고 저녁에 멋지게 차리고 놀러 가던 니콜의 엄마가 오버랩되었다.
그날 집에 돌아간 니콜에게 문자를 보냈고, 니콜은 바뀔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니콜이 이사 간 뒤에 다시 한번 연락을 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자주 생각했지만, 그런 채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 이후 니콜을 우연히 마주친 일이 있었다. 출장을 갔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 앞에서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추운 날이었다. 사무실 근처 버스정류장에 앉아 엄마와 함께 점심으로 보이는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우린 간단히 이사 간 곳에 잘 정착했냐는 인사 정도를 하고 헤어졌다.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게 낯선 영국은 아니지만, 그렇게 바람 불고 추운데 밖에서 먹고 있는 모습이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떠나질 않았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아직도 그저 내가 영국의 이방인인 걸로 해두자.
이제 보니, 왜 새 번호로 연락하지 않았던 거지, 난?!
니콜, 아니야. 난.. Yes, I Do care of you.
어제, 니콜에게 다시 연락..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