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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Sep 02. 2021

운동 젬병의 운동부 클럽활동

에세이/학창시절


클럽활동 ; 공통의 흥미와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모여서 하는 특별 활동. 학예, 운동, 취미 따위 활동을 한다.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


클럽활동의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그러나 나의 시작은 '자주적'이지 못했다. 별다른 취미도 없었고 예체능에 재능도 없어서 클럽활동이 달갑지 않았지만, 학교의 강요로 좋든 싫든 반드시 한 가지는 골라야만 했다. 흥미와 관심보다는 적당히 편안함을 지향하며 골랐던 것 같다.


나를 거쳐간 클럽활동에는 수예부(바느질반), 문예부(글쓰기반), 서예부(붓글씨반) 등이 있었고, 그 후로 언제부터인가 계속 운동부를 선택하게 되었다. 배드민턴부, 테니스부, 농구부, 배구부, 축구부.

나의 운동신경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체육이었다. 점수에 따라 성적표를 '수우미양가'로 나누던 시절, '수'수한 성적표에 유일하게 '우'울감을 안겨줬던 과목도 체육이었다.


체육은 늘 나를 바닥으로 몰아넣었다. 달리기는 했다 하면 꼴찌, 매달리기는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고, 뜀틀은 나에게 허벅지 피멍과 엄지 탈골을 안겨주었고, 평균대는 발목 골절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건 제자리멀리뛰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체육 실기시험에는 기본점수라는 것이 있었다. 기준 기록을 채우기만 하면 기본점수라는 것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 기본점수를 받을 실력도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0점을 주기 싫었던 체육 선생님들은 특별히 나에게만 추가 기회를 주셨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의 단독 공연은 매번  반복되었다.


제자리멀리뛰기 공연이 있던 날, 그 당시 선생님의 줄자는 너무나 짧아서 100미터 위치를 영점으로 줄자를 두셨다. 아이들은 양쪽으로 둘러 섰고, 나는 제자리에서 힘껏 뛰었지만 제자리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80미터쯤 뛰었을까.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나의 최선을 의심한 것인지 형편없는 결과를 믿을 수 없었는지 모두들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다들 두 번씩 뛰었지만, 나에게는 어김없이 추가 기회가 주어졌다.


서 너번 뛰는 동안 여전히 기본 점수에 해당하는 100미터를 넘을 수 없었고,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체육선생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또다시 기회를 주셨고, 결국 내가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리며 '제발 그냥 0점 처리해주세요.' 하며 잔인한 시간은 끝이 났다.


그런 잔인한 시간은 초중고 학창 시절 동안 종목을 바꿔가며 꼭 한 번씩은 반복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지켜보고 있었고, 중고 시절엔 합반 수업이라 관객이 두 배로 늘어 더 끔찍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상처 받은 만큼 점수도 잘 받았다.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하셨는지, 아마도 다른 실기종목 점수를 선택적으로 반영해주신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실기점수를 좀 두루뭉술하게 주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해본다. 울음을 터뜨리며 포기했던 순간들이 정말 0점으로 처리되었다면, 아마 나의 체육 성적표는 집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클럽활동은 운동부, 모두가 짐작할만한 그 이유다. 그저 체육선생님이 멋있었다.

시골학교 특별 복지였나. 이상하게도 나의 체육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훈남이셨다. 훈훈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체육의 'ㅊ'만 들어도 치를 떠는 나는 오로지 선생님을 보기 위해 운동부 클럽활동을 선택했다.


클럽활동 시간엔 잘할 필요도 없었고 망신당할 일도 없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을 실컷 보며 친구들과 깔깔대며 시간을 보냈다. 확인된 건 아니지만 거기 모인 상당수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공통의 흥미를 갖고 자주적으로 모인 순간이었다.


그 시간은 비공식 팬클럽 모임이었고, 선생님도 그 인기를 즐기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정규 체육수업 때보다 더 다정하셨고, 더 많이 웃으셨다. 20대의 젊은 체육 선생님과 꺅꺅대는 10대 소녀들. 그리고 거기에 열기를 더할 적당한 움직임들. 그 시간만큼은 나도 체육을, 운동을 즐겼던 것 같다.


운동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작이 어떠하든 즐겁게 땀 흘리며. 학창 시절 내내 즐겁게 운동했던 순간은 단연코 그때뿐이었다. 체육은 이론시험과 실습 정도로 하고, 경쟁 없는 클럽활동을 즐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지금껏 소소한 운동을 이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어른이 되고 내가 아이들과 가끔 하는 운동도 모두 클럽활동 시간에 했던 운동들이다. 배드민턴, 농구, 축구.

매번 나의 발목을 잡았던 체육시간에 배웠던 뜀틀, 평균대, 매달리기, 멀리뛰기는 그 어느 것도 일상에서는 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큰 키에 커트머리 날렵해 보이는 몸으로 체육복을 즐겨 입었던 내가 운동에 재능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난독증처럼 책을 거부하던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책을 잘 읽지도 않으면서 나는 나의 책을 내는 것이 꿈이고, 누군가 내 책을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나란 사람 자체가 아이러니 투성이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누군가에겐 추억을 불러오고, 누군가에겐 공감을 불러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렇게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ㅇㄷ ㅈㅂㅇ ㅇㄷㅂ ㅋㄹㅎㄷ'


이 글이 누군가에겐 피식하는 헛웃음이라도 안겨주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좋아했던 선생님을 떠올리며 설레는 밤을 안겨주기를, 바라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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