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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Aug 19. 2021

골목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몰랐던 마음 1 / 골목/ 글쓰기/ 에세이


초등학교 옆 방앗간, 어둑한 오후가 찾아올 때면 나는 매일 가게 앞 골목을 쓸었다. 바람에 나뒹구는 과자 봉지, 뚜껑 열린 뽑기통, 아이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에 방앗간 깨 가루까지 더해져서 그 시간 골목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하루 종일 가게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골목을 쓸고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어른의 칭찬이 들려왔다.


"아이고, 또 골목 쓰나, 와 맨날 혼자 하노. 이 집은 야가 젤 착하제?."


"우리 셋째 딸이 제일 효녀지요. 맨날 젤 마이 도와주지."


무뚝뚝한 엄마도 그때만큼은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기쁨으로 요동쳤다. 그럴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빗자루질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올까 부끄러워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똑같은 말씀인데 어쩜 매일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지. 나는 그 칭찬이 듣고 싶어서 매일 빗자루를 들었다.


그런 마음을 알리가 없는 엄마는 가끔 골목을 쓸어두셨다. 가게 일이 일찍 끝나서 빨리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셨는지. 아님 여러 형제 중에 매번 혼자 나서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셨는지. 알 수 없지만, 깨끗한 골목이 나는 어쩐지 서운했다. 오늘은 쓸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깨끗한 골목을 또 쓸곤 했다. 경계가 모호한 옆집 앞까지.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골목을 쓸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였을까. 형제 많은 집에서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나는 늘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오남매 중 셋째 딸. 위로는 두 살씩 터울의 언니 둘, 아래로는 네 살씩 터울의 동생 둘, 그 사이에서 나는 존재감 없는 딸이었다.


두근거리며 맞이했을 첫째 딸도 아니었고, 뭐든 잘하는 둘째 딸도 아니었고, 몇 년 만에 얻은 늦둥이 넷째 딸도 아니었고,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형제 많은 집 사이에 낀 셋째 딸이었다.


언니들처럼 예쁘장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형제들에 비해 몸이 약하지도 않았다. 특별히 예쁨 받을만한, 특별히 걱정받을만한, 그런 이유가 내겐 없었다.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아무 옷이나 잘 입고, 공부도 그럭저럭,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조르지도 않던 그야말로 무던한 아이였다. 그런 존재감 없는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착함'이었다.


제일 착하다는, 제일 효녀라는 그 말에 취해 많은 일을 했다. 어린 동생을 돌보고, 가게일을 돕고, 엄마와 함께 집안일을 했다. 골목을 쓰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칭찬받고 싶어서, 착하다는 그 말이 좋아서. 그래서였다. '착함'을 통해 존재감을 찾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성인이 됐다.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만 같았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뭐든 열심히 노력했다. 학창 시절엔 학교에서 받는 상으로  자존감을 챙겼고, 직장을 다닐 땐 일로 인정받아 자존감을 챙겼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 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육아는 생각만큼 능숙하지 않았고, 주변을 돕는 일은 오지랖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살림 솜씨도 그다지인 아줌마로 자존감을 챙기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성취감을 위해 틈틈이 자격증을 따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도 여러 번 반복했지만, 자꾸만 엄마손을 벗어나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번번이 일을 그만둬야 했다. 용기 내어 시작했던 일들도 꾸준히 하지 못하고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존감은 점점 떨어졌다.


그 무렵 책을 만났다. 그리고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가 조금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있구나 생각했다. 스스로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지금껏 남이 나를 인정해주고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던 그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슬펐던 마음을 다독이기도 하고, 행복했던 감정을 키워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몰랐던 내 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는 몰랐던 그 마음, 골목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모두 나의 자존감을 챙기는 일이었다.  

골목을 쓰는 아이는 글을 쓰는 아이가 되었다. 글을 써서 가끔 상을 받아 기뻐할 때나 탈락으로 좌절할 때를 보면 여전히 나는 칭찬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다. 하지만 이제 글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글에서 더 많은 것을 찾고 싶다. 글을 통해.



<작가의 말> 이 글은 우리가 함께 썼던 강북문화정보도서관 문집 <에세이를 부탁해/쓰지 않으면 몰랐을 마음>에 실린 글입니다. 정식 출간은 아니지만 연말까지 강북구 모든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합니다. 마음을 울리는 다른 분들의 글도 함께 봐주세요. 우리, 책으로도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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