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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Aug 20. 2021

아름다움을 보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몰랐던 마음 2 / 에세이

강북문화정보도서관/에세이를 부탁해 '쓰지 않으면 몰랐을 마음'

무겁지 않은 이유로 산부인과 검진이 잡혔다. 아홉 살 아들을 집에 혼자 두고 가기가 걱정돼서 함께 병원에 갔다. 대기실엔 만삭의 임산부와 신생아를 안고 있는 부부까지 온기가 북적거렸다. 산부인과에 가면 항상 기분이 묘하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아이를 갖고 출산하기까지의 두근거림이 떠올라서 설레고, 검진을 앞둔 긴장으로 두렵다. 설렘과 긴장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다 보면 어느덧 대기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는다. 그동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산모수첩을 들고 있는 새내기 부부, 만삭의 몸으로 느리게 걷는 예비 엄마, 한 손은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은 배를 잡고 있는 능숙한 엄마, 신생아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아빠와 할머니까지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지난 몇 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가 지나온 모든 순간을 그들을 보며 다시 한번 떠올린다. 출산하지 않은 산모를 보고 '그때가 좋을 때다' 생각하기도 하고, 갓 출산한 산모를 보며 '한동안 고생하겠네' 걱정하기도 하고, '난 다 벌써 다 키웠지요'하고 마음속으로 약 올리며 우쭐하기도 한다. 한창 그런 감상에 젖어 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말을 걸어왔다.


신생아를 가리키며 자기도 저렇게 작았냐며, 아기가 너무 작고 인형 같다며 웃었다. 궁금해하는 아들을 위해 우린 아기와 조금 더 가까운 자리로 옮겼다. 두어 개 의자 너머에 있는 아기를 아들은 유심히 살폈다.

 

"아흐. 너무 귀여워서 못 보겠어요, 엄마"  


아들은 한 팔로 두 눈을 가리고 몸을 베베 꼬면서 내게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아들의 미소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너도 아기 때는 저렇게 작았다고 말해주니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정말요? 정말요? 저도 정말 저렇게 작고 귀여웠어요?"
"응, 정말이라니깐."

이야기하는 동안 아기는 진료실로 사라졌고, 몹시 아쉬워하는 아들에게 다른 아기들을 조금 더 보여주기로 했다. 우리는 신생아실이 있는 건물 6층으로 갔다. 마침 면회시간이라 아기를 보러 온 가족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인 듯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들은 창문에 달라붙어 아기들을 보느라 정신없었고, 나는 행복해하는 아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주변을 살피다 보니 갓난아기를 보며 모두들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만큼 굳어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도 순식간에 함박웃음으로 변했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던 그 광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볼 때면,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함께 보게 됐다.

얼마 전 딸아이와 담벼락에 핀 벚꽃을 보러 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꽃길 옆에서 요리조리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담벼락에 기대앉은 젊은 여자 둘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딸아이 눈에도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우리도 거기에 앉자고 했다.


담벼락에 기대앉으니 아까와는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길을 가다 벚꽃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았다. 벚꽃만큼이나 활짝 핀 얼굴이었다. 아마도 올해의 벚꽃은 '꽃' 그 이상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떠나지 못했던 여행이었고, 갇혀 있었던 마음을 열어주는 문이었겠다. 그래서 꽃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유난히 더 밝았던 것 같다. 아마 꽃을 보던 내 얼굴도 그들을 닮지 않았을까?


해 질 녘 노을 아래, 흩날리는 벚꽃을 함께 맞았던 우리들. 떨어지는 꽃잎에 추억을 담았던 딸과 나, 담벼락에 기대어 담소를 나누던 두 여자, 지나가며 활짝 웃던 행인들까지. 모두 더해져서 그날의 기억이 완성되었다. 덕분에 아름다웠던 그날을 오롯이 기억하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것을 마주했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함께 보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들의 미소를, 그들을 닮은 나의 미소를 함께 간직하기로 했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더 또렷이 간직할 수 있게.



너무나 감사하게도 고수리 작가님께서 인스타그램에
이 글에 대한 긴 피드백을 남겨주셨습니다.
궁금하시다면 함께 읽어주세요. ^^


고수리 작가님 인스타그램 피드백 



<작가의 말> 이 글은 우리가 함께 썼던 강북문화정보도서관 문집 <에세이를 부탁해/쓰지 않으면 몰랐을 마음>에 실린 글입니다. 정식 출간은 아니지만 연말까지 강북구 모든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합니다. 마음을 울리는 다른 분들의 글도 함께 봐주세요. 우리, 책으로도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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