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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Aug 21. 2021

죽음을 앞둔, 나에게 띄우는 편지

몰랐던 마음 3  / 나도 에세이스트 가작/에세이

죽음을 앞둔, 나에게 띄우는 편지

(미래로 가는 특급 열차가 있다면,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안녕? 나의 미래.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마흔두 살의 당신이에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혹시 요양병원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진 않나요? 지금의 경제상황을 고려해보면, 아마 그리 좋은 시설에서 지내지도 못하겠죠. 가끔 바퀴벌레가 지나다니는 낡은 병실에, 박봉으로 불친절한 요양사들, 정신이 맑았다 흐렸다 하는 옆 침대 친구들, 건강을 고려한 밍밍한 식사들. 어쩌면 그게 전부겠죠.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하루 종일 먹고 쉬지만, 따지고 보면 자유라고는 없는 그런 삶 속에서,  당신은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나는 그런 당신을 위로하고 싶어요.


당신을 만나면,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똑같은 병원복을 벗겨내고, 내가 준비한 멋진 옷으로 갈아입혀줄게요. 영국 여왕처럼 우아하고도 예쁜 그런 옷. 당신은 특별하면서도 튀지 않는 걸 좋아하잖아요. 당신 취향은 내가 제일 잘 알죠. 하얀 당신 얼굴에 잘 어울리는 파스텔 블루 원피스가 좋겠어요. 신발은 구두처럼 보이지만 운동화처럼 발이 편한 걸로 준비할게요.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곳이 많거든요.


우선 예약해둔 샵으로 가서 헤어랑 메이크업부터 받아요. 예쁘게 꾸며서, 당신은 젊은 시절 아름다웠던 나를 추억하고, 나는 미래의 고운 당신을 눈에 담을게요.


메이크업이 끝나면, 바다가 보이는 식당으로 가요. 점심은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대게를 먹을 거예요. 예쁜 옷에 어울리지 않으면 좀 어때요. 좋아하는 걸 먹는 게 중요하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너무 행복해서,  우울증도 안 오겠다고 했던 당신이잖아요. 대게는 내가 '똑' 부려뜨려서, 당신 접시에 '촥' 놔줄게요. 당신은 맛있게 먹기만 해요. 어차피 당신이 나고, 내가 당신이니까.


 체력이 허락한다면,  식사가 끝나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게요. 자식들은 다들 바쁠 테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어때요? 나은이, 정기, 정희, 은주. 언제 봐도 좋은 당신의 친구들이요. 그들을 만나서 풋풋했던 소녀시절을 추억하고,  함께 여행했던 삼십 대도 얘기하고, 아직 나는 경험하지 못한 긴 세월에 대해 나눌 수도 있겠죠. 같이 웃고, 같이 눈물 쏟다 보면 아마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갈 거예요. 혹시라도 먼저 가버린 친구가 있다면, 내가 당신의 등을 쓸어내려 줄게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행복한 꿈을 꾸길 바래요.


눈을 뜨면 어린 시절 외갓집을 닮은 한옥집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 거기서는 소박한 집밥을 준비할게요.  외할머니가 솥뚜껑 위에서 부쳐주셨던 배추전, 엄마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에 호박잎 쌈,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엄마 김치를 가져갈게요. 맛있게 먹고 밤새 이야기 나눠요. 우리.


 당신을 만나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이들은 잘 자랐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해요. 그리고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뭔지, 다시 마흔 둘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혹시라도 게으른 나의 일상이, 당신을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면 사과할게요. 당신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돌아오면, 나중에 좀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현재를 다시 쓰고  싶어요.

 당신을 떠올리며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맞이하고 싶은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병원에서 치료라는 이름으로 통증을 버티며 연명하고 싶진 않아요. 내가 바라는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파티를 하고, 안락사가 허락된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그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요. 장례식은 하지 않을래요.  즐거운 나날을 보낸 사진에 짧은 메모를 더한 영상을 만들어서 작별인사를 전하면 좋겠어요. 다들 바쁜 시간 내서 장례식에 오느라 툴툴대지 않고, 조의금 낼 돈으로 맛있는 음식 먹으며, 영상 속의 나를 추억하게 하고 싶어요.


당신과 내가 만들어갈 우리의 죽음. 언제가 되었건 지독히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꿈꾸듯 잠들면 좋겠어요. 당신이 맞이 하는 죽음은 내 삶의 모든 순간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길 바라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미래의 당신에게 나를 보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을 살아갈게요.

안녕, 나의 미래.


김신회 작가님 심사평


<죽음을 앞둔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여행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가? 했지만 다 읽고 나니 ‘결국 삶은 여행’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나를 만나는 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마저 가미된 독특한 글이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독특한 접근도 색달랐지만,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 다정하게 이어지는 문장들도 인상적이었어요. 미래의 나에게 살뜰히 대하는 글쓴이의 모습에 어쩐지 울컥함도 느껴졌고요. ‘다정한 개성’, ‘따뜻한 발상’이라는 말이 절로 연상되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저 역시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졌습니다! 독자를 글 쓰고 싶게 만드는, 매력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 작가의 말 :


채널예스 2021년 4월호 / 나도, 에세이스트 '가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주제가 여행이었는데 죽음에 더 무게를 실었다는 것을 심사평을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정해진 주제에 글을 쓰는 건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첫 에세이가 이렇게 운 좋게 선정되고는 이후로는 쭉쭉 떨어지고 있답니다.  


비록 가작이지만 이 글은 저에게 정말 의미 있는 글입니다. 저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이 글로 도서관 에세이 수업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의 죽음을 미리 떠올려 봄으로서 현재의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죽음'에 관한 글을 한번 써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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