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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Sep 29. 2021

행복한 먹보는 무엇을 남길까

죽음을 앞둔 300일의 맛있는 기록/몰랐던 마음/에세이


당신 삶에 마지막 일 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쓰겠습니까.


삶에 마지막 일 년이 주어진다면, 단 한 끼도 허투루 먹지 않겠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 먹고 싶었던 음식, 특별하지 않아도 즐겁게 먹었던 음식,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 그런 음식들을 먹고 행복했던 기억을 쓰고 싶다.


'행복한 먹보는 무엇을 남길까'이란 책을 내고, 다정한 오은 님과 책을 소개하고, 나의 죽음을 유쾌하게 알리고 싶다.


 Oh  : 어떻게 이 책을 쓸 생각을 하셨나요?

스컬리 : 우선은 제가 먹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하하.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다 먹어보고 싶었어요. 함께 먹었던 사람, 즐거웠던 추억, 음식으로 시작해서 사람들과의 행복을 담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어요.


Oh  : 그러니까 단순히 음식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사람과 행복을 담은 이야기를 쓰셨군요.

스컬리 : 네, 사실 제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면 좋을지 고민했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음식이 떠올랐어요. 음식은 저를 행복하게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있고, 음식에 깃든 행복한 기억을 남김으로써 남겨진 사람들이 덜 슬퍼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Oh  : 네. 저도 참 즐겁게 읽었어요. 죽음을 앞두고도 이런 행복한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네요. 아마 가족분들도 이 책을 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님은 어떤 마지막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스컬리 : 저는 웃으며 떠나고 싶어요.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인생, 태어났을 때처럼 축하받으며 죽고 싶어요. 제 무덤 앞에서 울기보다는 저의 마지막 식탁을 나누며 함께 웃고 싶어요.


Oh : 네,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스컬리 : "얘들아, 여보, 엄마 아빠, 저 두 달쯤 후에 죽게 됐어요. 하지만 운 좋겠도 그 사실을 일 년 전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난 3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시간을 나누며, 정말 즐겁게 지냈어요. 행복했던 지난 세월도 충분히 추억했고요. 눈앞의 이별은 슬프겠지만, 사는 내내 제가 참 많이 행복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어요. 제가 떠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이 책 보며, 맛있는 음식 드시며, 행복한 기억을 읽어주세요. 우리 다음 생에 또 만나요."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남은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지난 300일간 매일 조금씩 써뒀던 편지와 책을 전하고 이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가족과 지인에게 각 한 통씩, 아이들에겐 좀 더 많은 편지를 남겨야겠지.

아직 어린아이들이 엄마 없이 겪을 삶을 생각하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힘든 순간 주저앉지 않기를 바라며, 행복한 순간 울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과 용기와 축하와 격려와 유머까지 모두 담아, 아주 많은 편지를 남겨야지. 남편에게는 몇 통이나 남겨야 할까. 몇 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춘기 아이를 대하는 방법', '건강을 챙기는 삶에 대한 당부', '새로운 이성을 만났을 때 망설이지 말라는 당부'. 아마도 이런 편지들이 아닐까.


시간이 허락한다면 죽음을 앞둔 분들과 만남도 갖고 싶다. 그들이 조금 더 즐거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만약에 책이 대박 난다면 인세의 반은 가족에게, 나머지 반은 그들을 위해 쓰고 싶다. 기부 재단의 이름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이것으로 행복한 '죽음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책이 적어도 '달러구트 꿈 백화점'정도의 성공을 이뤄야 할 것 같긴 한데... 하하 하하하하.


글을 쓰며 생각했다. 나에겐 과연 얼마의 시간이 남은 걸까.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 평균수명에 기대어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떠올랐다.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1982년이여, 안녕.' <박완서 에세이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중에서...


나는 산 날이 많이 남았을까. 살날이 많이 남았을까. 어쩌면 지금이 그런 예사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죽음을 앞 둔 순간까지 계획들을 미뤄두지 않고, 지금부터 실행해야겠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일지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일단 맛있는 한 끼를 먹어야겠다.




<당신 삶에 마지막 일 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쓰겠습니까.>라는 주제로 휘리릭 썼다가 땡 탈락한 글입니다. 꽤 흥미로운 주제였던 것 같아요. 공모전은 아쉽게 끝나버렸지만 덕분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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