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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Sep 13. 2022

못 말리는 우리집 그림쟁이들

그림책 마감이 코앞인데......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도서관 수업으로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언니도 동생도

타고난 재능

유독

나에게만 없는 그 재능


예체능

그중에서도 예능

그중에서도 자신 없는 그림실력


일천구백팔십구 년

내 나이 열 살

'물조심 포스터 그려오기'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거금 이만 원'을 주고

언니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아마도 그 시절 한 달 학원비가 이만 원이었다.)


몇 달을 모았는지 모를 큰돈을

한 번에 날려버릴 만큼

그만큼

그림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그런 내가 그림책을 쓰기로 했다!

그건 바로 우리집에 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한 때 화가를 꿈꿨던 남편.

그런 아빠를 꼭 닮은 아들.

그런 오빠를 곧잘 따르는 딸.


그들만 믿고

덥석 기회를 잡았다!


글은 내가 쓰고

그림은 아이들이 그려주겠지?

아님 남편이라도?


뒤늦게 참여한 수업이라

두 번의 수업과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고


의욕 넘치게 시작됐지만

몇 번이나 스토리를 뒤집느라

한 장도 못 그리고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휴 동안 후다닥 그려달라고 해야지.

일주일이면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거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집 그림쟁이들이 모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지난 몇 년간 자발적 자가격리로

요리조리 피해온 코로나인데...

왜! 하필! 지금!


나의 든든한 지원자

아들이 걸리고,

남편이 걸리고,

딸까지 걸려버렸다.


아들이 회복하고

남편이 회복 중이고

딸이 투병 중인

오늘 밤


쓸데없이 건강한 똥손만

홀로 버티며

글을 끄적이고 있다.


그림책 마감이 코앞인데

그림책은 손도 못 대고

괜히 생수병 뚜껑에 재능 낭비하고 있는

못 말리는 우리집 그림쟁이들


아침이 오면,

제발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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