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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May 20. 2023

오빠, 오늘은 내가 엄마였어.

남매일기/아홉살/딸/열세살/아들/일상


딸아이는 휴일을 맞아

뒹굴뒹굴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엄마를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걷고 또 걸어서

할아버지와 냠냠 밥을 먹고 돌아왔다.


툴툴대지 않고

시간을 내어준 아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아이를 위해 나는 무얼 해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게임을 떠올렸다.


엄마와 함께 게임을 하는 게 소원이라는

아이를 위해 용기를 냈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끔찍이 싫어하는

초초초짜 게이머

엄마는 그라운드에 던져졌다.


아군과 동맹하여 적군을 공격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


아홉 살 아이뒤에 숨어서

졸졸 따라다녔다.


정면을 쳐다보고 걷는 것조차 어려워서

하늘을 보고 바닥을 보고 걷다 길을 잃으면

아이는 매번 다시 돌아와 길을 알려줬다.


“엄마, 저만 따라오세요.

엄마, 제 뒤에 숨으세요.

엄마, 이렇게 하면 돼요.

엄마, 이렇게 방향을 맞추고 총을 들고

버튼을 누르세요. “


아이는 매 순간 친절했다.


하지만  겨우 몇 분의 게임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아이가 여섯 살 때부터 하던 게임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새삼 아이들이 존경스러웠다.


차라리 수학문제를 풀고 말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엄마와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학원에서 돌아온 오빠에게

신이 나서 말했다.


“ 오빠오빠, 오늘 엄마랑 게임을 했는데,
오늘은 내가 엄마였어. “


아빠가 그려준 배틀그라운드 실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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