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막, 크리스털 사막, 그리고 백사막
첫 번째 코스, 흑사막의 검은 모래
검은흙으로 둘러싸인 땅으로 접어든다. 흑사막. 자세히 살펴보니 돌들의 색이 어두운 광물질 같은 성분이 섞인 듯했다. 영화에서 보던 사막, 말하자면 사구 형태의 듄의 형태와는 완전 거리가 멀었다. 검은 돌들이 깔린 어두운 땅덩이는 마치 아스팔트를 연상하게 하면서도 발을 디딜 때마다 뜨겁고도 모종의 비밀이 숨겨진 듯한 묘한 기운이 있었다. 지프차로 삼십 여 분을 달려오면서 뙤약볕에 시달렸던 터라 상상과 다른 사막의 존재에 별 감흥 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환상 속의 사막이었던 걸까. 생전 바닥의 모래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처음 본 사람마냥, 검은 돌바다 같은 모래 알갱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난, 크리스털 사막
비슷비슷한 황무지의 형태이지만, 이 땅의 돌은 또 다르다. 투명한 결정이 군데군데 박혀 눈에 띄는, 크리스털 사막. 앞서 거쳐 온 흑사막도 그랬지만, 우리가 평소 갖고 있던 사막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모습의 땅이었기에 아직도 우리가 과연 '사막'에 들어온 건지, '사막'을 보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드디어, 백사막에 들어서다.
크리스털 사막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달리다 보니, 해가 넘어가는 오후, 하늘색이 변하며 땅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었다. 드문드문 하양의 돌들이 솟아있는 기묘한 형상의 지형이 펼쳐졌다. 이런 모양새야말로, 여느 조각가가 흉내내기 어려운, <바람의 조각>이려나.
우리를 가이드하던 현지인들은 바위 생김생김마다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새바위, 버섯바위, 낙타바위 등등, 그들이 이름 붙이면, 그럴듯해 보였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좌표 혹은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물론 이미지가 중요한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이 황량한 사막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실루엣을 주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에겐 길을 찾는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각 지점에서 우리는 멈췄고, 역시, 기록을 남겼다. 마치 나중에 이 길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이 더이상 조각을 멈추어 주어야 하겠지만.
이 밤. 백사막의 끝. 여기가 우리의 목적지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없는 땅덩이, 그저 모래와 가끔 솟아있는 하얀 바위들, 하늘이 세상의 전부다.
환상의 단계를 지나 이제 진짜 사막 위에 서있음을 지각하게 되었다. 실제적인 궁금증이 몰아쳐오기 시작한다. 여기, 이곳에서 과연 생존이 가능한 것인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걸까. 고대부터 지금까지 몇 천년에 걸쳐 ‘사막’은 존재하고 있었고, 이 땅을 터전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사막에 강한 생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모래를 피하고, 태양을 이기며, 물자를 조절해서 그들의 문화를 가늘지만 길게 이어오고 있었으니.
최근 흥미 있게 보았던 영화 <인터스텔라> 속에서는 지구 멸망의 순간에 대해 ‘사막화’라는 기후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온몸으로 모래바람을 맞아가며 짧게나마 생물로서의 위기감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까닭에 그 설정이 (내가 경험한 그때 그 사막의 모습이었기에) 놀랍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영화 속에서는 사막화되어가는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다른 행성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어떤 식량도 생산하지 못하여 벗어나야 하는 그 순간이 올 것인지, 우리가 과학과 인공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가늠할 길은 없다. 당시의 여행자로서의 나로서는 단 하룻밤의 생존의 가능성이 더 호기심 어린 주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장 씻을 물과 마실 것, 이런 것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눈 앞에 보이는 미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모래 바람만으로도 실감했다. 지구를 벗어나는 우주여행의 체험이 이런 류의 것일까, 궁금하면서도 새로운 땅을 밟고 그 경계를 경험한다는 흥분 자체로 그 황무지의 공허한 공간이 온통 신나는 아드레날린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