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고 온 발걸음
열차는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고 나서야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차 안은 생각보다 고요하다. 바퀴가 선로를 훑으며 나는 소리 말고는, 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복작이는 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기차의 내부는 반복이다. 6개의 침대칸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비슷하게 보인다. 돌아다닐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을 모두 탐색하고 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창 밖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창밖에는 이미 출발할 때부터 흐려지고 있던 회색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얀 자작나무 위로, 하얀 눈이 떨어진다. 그나마 선로 가까이 있던 녀석들만이 지나가는 열차에 휩쓸려 외투를 벗었다.
경치를 구경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시베리아의 겨울에는 해가 짧다. 이미 4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바깥은 어둑어둑해지려 하고 있었다. 지평선은, 이윽고 그 하얀 눈꺼풀을 모두 덮어 내렸다.
어둠이 창 밖에 내리자, 고요함은 배가 되었다. 정말 가끔씩 보이는 가로등만이 이 기차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야경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조명도 없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을 찍는 것은 어려웠다. 카메라에 비치는 것은 창에 반사된 객실 안의 모습뿐이었다. 사진을 담는 것은 포기하고, 자리를 펴고 누워 가만히 경치를 감상하기로 했다. 요람처럼 흔들어 대는 선로의 울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깥 풍경, 10시만 되면 꺼지는 기차 안의 조명.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사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무언가 만족스럽게 잠이 온 듯해 보이지만... 자리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자리는, 창가와 평행하게 눕는 침대칸이었다. 그것도 문 옆의.
보시는 대로, 세로로 4자리는 다리를 뻗을 수 있다. 그러나 가로 2자리는 아니다. 붙박이 가구 맞추듯 길이를 남기지 않고 기차 구조를 만들어 둔 통에, 키가 큰 사람들은 다리를 펴고 누울 수가 없다. 게다가 방금 말한 말마따나 문 옆에 자리를 잡아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문을 여닫으면 찬바람과 함께 문으로 막혀 있던 열차 굴러가는 소리가 그대로 귀를 직격 했다. 역시, 가장 싼 표는 그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혹시라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 계획을 하고 계신 분들 중에, 조금이라도 키가 크거나, 예민한 분은 일반석에서 37, 38번은 거르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계속해서 잠을 설쳐대어, 7시도 되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었다. 일단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1층 자리는 구조상 침대 중간 바닥을 뒤집으면, 그것이 바로 의자 2개와 식탁이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자리를 2층에 있는 사람과 공유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아직 2층 사람은 자고 있었지만, 눕는 자리가 너무 불편해서 그냥 앉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자, 좀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갖고 온 주전부리를 씹으면서, 크라스나야르스크에서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