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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Oct 15. 2021

[양배추, 서양배추 or 대갈배추]

돌아가요, 짬밥천국~


50일 후면 제대한 지 24년에 이릅니다.

제대 대신 쓰는 전역(轉役: 바뀔 전, 일 역)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역 군인에서 예비역 군인으로 역할이 전환된다는 뜻이라서요.

군대에서 제외된다는 제대(除隊: 덜 제, 무리 대)가 마음 편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청춘을 희생하는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 마음은 달랐을 겁니다.^^;;


군대를 ‘짬밥천국’이라고도 부릅니다.

짬밥은 남긴 밥 ‘잔반(殘飯)’의 속어입니다.

군대에서 오래 생활할수록 남겨 버린 밥의 양도 비례해, 경력을 ‘짬밥’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문) 어이 신병~, 너 정도는 내가 남긴 짬밥으로 파묻어버릴 수도 있어!


군대에서 나오는 밥은 대규모로 증기를 이용해 찐 밥이라, 찰기와 단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문자 그대로 밥맛 없습니다.

반찬들도 맛과는 거리가 멉니다.

식비 단가가 교도소 수감자들 식단보다도 낮은 데다가, 대규모 재료 손질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90년대 후반 논산훈련소 교육연대의 경우, 취사병 15명이 2,300명 분량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십원짜리 동전도 씹어삼킬 청춘들조차 많이 남깁니다.

군인들이 남긴 잔반으로, 논산군 연무읍의 닭과 돼지들이 살쪘습니다.


식비 단가를 맞추다 보니, 배추가격이 높을 때는 양배추로 만든 김치가 나왔습니다.

덜 익은 채로 식판에 오르는데, 양배추와 양념의 마리아주(mariage. 불어: 결혼, 어울림)가 드라마 ‘사랑과 전쟁’입니다.


그래도 일주일쯤 지나면, 새콤하고 달큰한 맛과 탱글한 식감이 어우러져 별미반찬이 됩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간이 덜 밴 배추김치로 바뀌었습니다.

먹을 만한 맛이 놀림 당하는 맛으로 전역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럴 걸 대체 왜 만들고 내놨는지…


아침에 냉장고를 열었더니, 양배추가 눈에 들어옵니다.

꽤 큽니다.

청소년 머리통만 합니다.

모양도 머리처럼 둥그스름합니다.

그래서 유럽에선 양배추를 머리채소란 뜻으로 cabbage라고 부릅니다.

뿌리말인 프랑스어 카보슈(caboche)와 라틴어 카푸트(caput) 모두, ‘머리(head)를 뜻합니다.

서양에서 왔단 의미의 ‘양(洋)배추’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일본어로는 타마나(たまな. 玉菜: 구슬 옥, 나물 채)라고 부릅니다.

양파 타마네기(タマネギ. : 구슬 ,  )처럼, ‘동그란 모양 나타냅니다.

저는 일본말 사용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물의 특징을 잡아냈다는 점에서, 양배추나 양파보다는 동글이배추나 구슬파가 더 감동적입니다.

이렇듯 cabbage는 둥그런 머리통 caput에서 왔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냥 서양배추로 통합니다.


마음 같아선 대갈채로 부르고 싶습니다.

머리채라고 부르면 ‘오케이 광년자매’나 ‘What the 장보리’ 같은 막장연속극이 떠오를 듯하니까요.^^;;

순화해서 동글배추라고 말했다가 별난 국어파괴자 녀석으로 한소리 들은 후론, 저도 그냥 양배추 양파에 의견을 달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마음을 담아, 이해를 돕기 위해 모처럼 똘기부림을 감행해 봤습니다.

첫 사진은 오늘 아침 찍은 셀카입니다.

살신성인과 실신성인의 경계에 선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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