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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한테 안 돼!”

by 어풀

“우리는 일본한테 안 돼!”


1980년대 국민학교 교실, 선생님들은 종종 이 말을 읊조리셨습니다.

일본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움직일 만큼 부강했습니다.

선진 서유럽국가들이 현대국가로 인정하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습니다.

반면 한국은 종전 30년 남짓 지난, 격동과 변화의 나라였습니다.

전성기의 프라이드FC와 스피릿MC보다, 더 큰 격차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식하고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말하곤 했죠.


“우리는 일본한테 안 돼.”


이 모습에 뭔가 ‘있어빌리티’가 있어 보였는지, 이 말을 따라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원수 일본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확정적 진리나 속담처럼 남용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귀에 박히는 그 주장이, 뇌에 자리잡던 상식과 창의를 씻어버리더군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 우월주의에 세뇌(洗腦: brain washing)되었습니다.


30년 넘는 세월이 지난 2020년대, 여전히 일본 우월주의론자들을 종종 봅니다.

지식과 경험 기반의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저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because 주변 어른 새드 소!)” 앵무새처럼 옮기며, 자아도취에 빠지곤 하더군요.

부패기득권 옹호 미디어들이 꿰맞춘 억지논리를, 마치 자신의 지식인 듯 늘어놓습니다.


세 부류가 있는 듯합니다.

일본이 잘 돼야 계속 떵떵거리고 사는 기득권, 그 밑에서 살살거리며 콩고물 묻히려는 아첨꾼 무리, 그리고 지식과 철학 없이 선동되는 무지한 군중.


세상은 변합니다.

미개했던 유럽이 절대왕정 시대 총, 균, 쇠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인류 역사 최강의 경제대국이었던 당나라는,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며, G2 중국으로 부상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일본한테 안 된다는 주제 넘은 가르침에, 이제 가래침으로 맞받아칠 힘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지성과 정의, 용기가 있습니다.

정의와 용기가 거세된 일본과 중국은 꿈도 못 꿀 일들을, 우리가 이루어 가는 바탕입니다.


이 힘을 모으기까지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외압보다 힘든 게 내부의 분열입니다.

화합은 100% 만장일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협의입니다.

협의는 의견이 달랐던 이들까지 포용해, 함께 가는 길을 마련해 줍니다.


협의의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에 배경, 목적, 기대효과,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면, 합리적인 결정에 가까워집니다.


- 우리가 어떠한 상황으로 힘드니

- 우리가 이 과제를 해결하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

- 이런 정책, 저런 노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봅시다. 함께 더 행복해집시다!


안타깝게도 현실세계에서는, 이러한 정책 협의보다 헐뜯고 꾸짖는 행위들이 토론을 주도하는 듯 보입니다.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실현가능정책 공약에 박수를 보내고, 과도한 흑색 비방엔 옐로카드를 뽑아들어야 합니다.

위정자들은 아직 우리 국민의식을 개돼지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지성과 논리의 힘을 보여줘야 바뀝니다.


과거 이재명의 욕설이나 이낙연의 천착된 엄중함은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와 아이들의 나라를 정의롭고 지혜롭게 이끌 수 있는 정책과 인물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집단 지성과 정의감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데 대한 불안감과 적지 않은 갈등 요소들이 여전합니다.

지혜를 모아 얽힌 실타레를 풀 듯 하나씩 풀어간다면, 우리의 꿈도 하나 둘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투표가 만능키는 아닙니다.

사람 잘 뽑았다고 하루 아침에 세상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 뽑으면 삽시간에 난장판 된다는 걸,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혜롭게 투표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로 좋은 정책에 집중하게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한 줄 요약: 네거티브 선동 자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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