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상징계에 대하여

말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세계

by 신밧드



우리는 말을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말이 늘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묻기도 전에, 나는 이미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어떤 규칙 안에 놓여 있습니다. 말은 나의 의지보다 앞서 있었고, 그 말이 만든 질서는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삶을 조직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말의 세계로 들어오고, 그 안에서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미지로 꾸는 꿈의 세계가 있다면, 그것이 상상계일 것입니다. 상상계는 설명보다 먼저 다가옵니다. 장면이 있고, 분위기가 있으며, 이유를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을 느끼고, 기억하고, 상처 입고, 위로받아 왔습니다. 상상계는 말없이도 작동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설명하지 못해도 분명히 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말이 없으면 그 세계는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말이 없으면 생각도 쉽게 흩어지고, 기억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말이 없으면 꿈조차 무성영화처럼 꿉니다. 장면은 선명하지만, 자막은 없고, 의미는 끝내 붙잡히지 않습니다. 이미지가 흘러가고 나면, 우리는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깨어납니다.


말은 바로 그 자리에 도착합니다. 말은 장면에 이름을 붙이고, 흐름에 방향을 주며, 경험을 이야기로 묶습니다. 말이 생기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약속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말은 세계를 세웁니다.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혼란을 질서로 바꾸며, 삶이 유지될 수 있는 틀을 만듭니다. 상징계는 억압 이전에 조건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말은 언제나 안전만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한 번 세워진 말은 쉽게 굳어지고, 굳어진 말은 질문을 허락하지 않기 시작합니다. 규칙은 보호막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계선이 됩니다. 말이 너무 단단해질 때, 우리는 안정을 얻는 대신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이 되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은 위험한 것이 됩니다.


어떤 이는 이 말의 세계를 세웠고, 어떤 이는 그 안에서 노래했으며, 어떤 이는 그 말로 고백하다가 무너졌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말 앞에서 사람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규칙을 받은 손은 동시에 책임을 짊어지고, 이름을 부르는 입은 언젠가 그 이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신앙도 말의 세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말로 전해지고, 전통은 문장으로 남으며, 공동체는 규칙으로 유지됩니다. 말은 신앙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신앙을 굳게 만듭니다. 말이 살아 있을 때 믿음은 숨 쉬지만, 말이 굳어질 때 믿음은 반복됩니다. 즉, 믿음은 고착화된 채로 같은 문장을 되풀이합니다. 확신이 질문을 밀어낼수록, 신앙은 점점 말의 안전 속으로 숨어듭니다.


그렇다고 말에서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침묵만으로는 삶을 나눌 수 없고, 체험만으로는 이야기를 전할 수 없습니다. 상징계는 벗어나야 할 감옥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계입니다. 다만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이 세계를 모두 덮지 못하고, 규칙이 삶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말은 다시 숨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계 안에 서 있습니다.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말과 규정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갑니다. 상상계와 상징계는 나란히 작동하고, 서로를 부르며 우리의 삶을 형성합니다. 이제 그 말의 세계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말이 어떻게 세계를 세우는지,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리고 말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말하게 되는지를 천천히 바라보려 합니다.


상징계는 새로운 단계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오래 살아온 세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제 그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걸어가 보려 합니다.


우리가 말속에 들어올 때

우리는 말을 쓴다고 느끼지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 먼저 우리를 불러내고
우리는 이미 마련된 자리에 서 있다


문장을 고르기 전부터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태도와 기대를
자연스럽게 배워 왔다


이름은 선택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말
아버지와 어머니
남자와 여자라는 호명들이
이미 관계의 구조를 세워 두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익혔다


직업과 역할이라는 말이
하루의 리듬과 관계의 거리를 정했고
잘했다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은
우리의 몸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자유롭게 말한다고 믿지만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말은 계속 작동한다
무엇이 정상이고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조용히 가르치면서


그래서 말은 도구라기보다 좌표였다
생각의 방향을 정하고
삶의 가능성을 미리 배열해 두는
보이지 않는 질서


말이 없으면 꿈조차
무성영화처럼 흐른다
장면은 남아 있지만
왜 그런지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 밖으로 완전히 나갈 수 없고
침묵조차 말의 그림자임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계는 감옥이 아니라 구조였고
우리는 지금도
말이 우리를 너무 세게 묶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문장 사이에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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