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늘 직접 운전하고 편히 다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는 거라 모든 게 낯설었다. 버스 노선을 알아야 했고, 버스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집을 나서는 일도 많았다. 내 차로 이동하는 편안함과 안락함은 없지만 운전할 때와는 다른 자유가 주어진다. 음악이나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기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하는 등 아침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출근길 잠깐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리를 지켜보게 됐다.
한 달 정도 지나니 금세 버스를 타고 기다리는 일도 익숙해지고 자주 같은 버스를 타다 보니 눈에 익은 사람들도 하나둘 생겼다. 한 여학생은 늘 작은 수첩을 들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공부한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빼곡히 적힌 무언가를 늘 꾸준히 읽어 내려간다. 문득 시험 시간의 긴장도와 소리에 예민한 학생들이 일부러 이런 버스에서 공부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학생의 간절함을 뒤에서 지켜보며 적어도 그 학생에게만큼은 빈자리 하나쯤 척척 생기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유달리 한 정거장에서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버스에 오르신다. 차가 휘청거리기라도 하면 더 기둥을 꽉 잡는 모습에서 걱정이 앞선다. 어느 날엔가 꽉 찬 버스에서 내 옆에 나란히 서 계시던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 것 같은 두 분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서로의 나이를 묻고 있었다.
"나는 38년생이에요." '38년생?' 다시 한번 어르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신 얼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혼자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니고,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온화하게 나눌 수 있는 그 건강함이 놀라웠다. 그 순간 내 나이를 헤아리며 나역시 어르신의 나이가 되어서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닐 만큼 건강한 사람이길 꿈꿨다.
오늘 아침 버스 주인공은 '어세 오세요' 기사님이었다. 출근길 아침 버스를 타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어서 오세요!' 건넸다. 적지도 않은 그 많은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런 마음이라니. 얼굴도 모르는 기사님이지만 그런 다정함을 지닌 분이라면 자신의 삶에도 다정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사님의 작은 환대 덕분인지 그날 버스 안은 여느 때보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버스에서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일상의 소음들이 있다. 미처 진동으로 바꾸지 못한 핸드폰이 울리고, 누군가 나지막이 틀어놓은 유튜브 소리도 듣게 된다. '카톡'과 '당근'은 버스 안에서 빼면 아쉬운 양념 같은 소리들이다. 중국인이 통화를 할 때면 무협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소음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사실 다 비슷하다는 것, 다들 애쓰면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모두 다르지만 그리 다르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삶의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있지 않았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내가 머무는 공간만 큼에서만 삶을 바라봤던 것 같다. 홀로 차를 운전해서 출근하고 늘 만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비슷한 삶들을 구경해 왔다. 늘 읽던 책의 장르만 읽었던 기분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하고 당연한 일들을 많이 잊고 있었다. 도처에 삶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