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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12. 2022

잉걸불을 아시나요?

캠핑을 자주 다니지는 못하지만 일상을 잠시 떠나는 느낌이 좋아 캠핑을 참 좋아한다. 조금은 춥거나 덥고, 불편함도 따르지만 볕이 좋고 바람마저 따스한 그런 날에는 자연스레 캠핑을 떠올린다. 후배 가족의 소개로 처음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작년부터는 나만의 미니멀한 방법으로 캠핑을 즐기는 중이다. 잠을 자지는 않고 화로대와 장작, 커피를 챙겨 들고 캠핑장으로 간다. 


화로대에 장작을 두고 불이 잘 붙을지에 마음을 쓰다가 어느새 불이 잘 타오르면 그때부터 마음이 차분해져 잠시 생각을 멈춘다.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바싹 잘 마른 참나무 장작을 더미에서 꺼내 하나씩 더하고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며 나오는 노란 불꽃을 내려다본다. 금세 나무가 타들어가며 나무를 태우는 냄새가 올라오고 불꽃은 세진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다가 다음 문장을 만났다. 

'불을 피우면 그 속에는 항상 어떤 얼굴이 보인다. 노동자는 저녁에 그 불을 바라보며 낮 동안에 쌓인 찌꺼기와 먼지를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씻어낸다.'


나 역시 화로대의 불을 보며 하루 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내게 남아 있는 찌꺼기와 먼지를 씻어내기 시작한다. '오늘 왜 그랬을까?' '다음에는 어떡하지?'와 같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던 생각들을 종이에 적어 불에 태우는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 일렁이던 마음속 복잡함은 조용히 가라앉고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너그러움이 절로 생긴다. 고해성사처럼 왠지 이 불 앞에서는 나의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것만 같고 타인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와 같은 생각쟁이는 불멍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에도 생각을 온전히 멈출 수는 없다. 과거의 아픈 내가 얼굴을 내밀어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기도 하고, 현재의 내가 있어 감사하게 되고, 미래의 나를 근거 없이 조금은 밝게 그려보게 된다. 타오르는 불빛은 때로는 그렇게 나의 해우소가 되어준다. 


불꽃이 잦아들 즈음 화로대를 내려다보면 빨간 숯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이런 불을 이르는 순우리말 '잉걸불'이라는 단어가 있다. 잉걸불을 사전에 찾아보면 '활짝 피어 이글이글 한 숯불'이라고 나온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보다 훨씬 더 뜨거운 상태라고 한다. 

불꽃이 없음에도 주변은 환하고 여전히 따습다. 나무가 타고 불꽃이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이글대는 잉걸불처럼 나도 나를 불사르고도 조용히 따뜻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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