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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12. 2021

[서평]작별하지 않는다.

삶이 진동하는 책

영화 <해리포터>에서 마법세계 사람들은 자신의 편이 아닌 마법사들을 죽이고 어둠의 세계를 가져왔던 어둠의 마왕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서로의 대화에서도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you know who?"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그들처럼 제주 사람들에게는 "you know what?"이 있었다. 4.3 사건이다. 나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사람이다.

"4.3 사건이 뭐예요?" 내가 자라오면서 4.3 사건이 뭔지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내게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몰랑 조타." 모르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그렇게 4.3 사건은 반세기 동안 제주 사람들에게는 꺼내면 안 되는, 꺼내서도 안 되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 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볼 수조차 없었던 이 일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기꺼이 꺼내 놓아주었다. 누군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리며 수십 년간 가슴속에 담고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난데없이 가족을 잃고도 더 큰 고통이 올까 숨죽이며 말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상처를 견디며 살아내었는지를 인선이의 가족사를 통해서 담담히 표현해주고 있다.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 상처에 무뎌지는 것이라지만 1948년 제주에서 있었던 인구 1/10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차별하게 학살당하던 죽음의 공포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은 사라지지도 무뎌지지도 않았다. 눈만 오면 생각이 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언제든 제주 사람들은 그 시절 그 시기로 돌아가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4.3 사건이 없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 역사 속 제주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4.3 사건을 겪은 엄마의 기억을 쫓아 파헤치던 인선은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4.3 사건에 대해서 머리로만 알았지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했다.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어떤 인간에 대한 판단은 인간이 처한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때는 섣불리 말할 수 없다지만 최소한의 죽음의 이유도 모르고 죽어야만 했던 사건을 바라보며 당시 제주 사람들의 고통이 다가와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4.3으로 아픈 제주 사람에게 위로와 정화를 안겨주는 사랑이다. 상처는 꺼내어 환부를 드러내어 치료해야 한다. 인선이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을 때 봉합 수술 후 신경이 죽지 않도록 3분마다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한 생을 살아가기에 꼭 남겨둬야 할 기민한 신경을 살리기 위해서는 고통을 3분마다 이겨내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제주의 아픈 상처는 덮어서 곪게 두는 것이 아니라 아프더라도 고통을 참아가고 직면하며 누군가는 바늘을 찔러 신경을 꿋꿋이 살려내는 게 필요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손가락에 3분마다 찔러대는 바늘 같은 책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다. 4.3 사건의 학살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며 그 가족에게 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말에 후회와 한을 안고 그 인생을 살아내는 내가 살아가는 제주의 누군가의 이야기다.

'그때 내가 무사 오빠신디 머리가 이상하다고 해실카? 무사 그런 말밖에 못해실카?'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고 생이 끝날 때까지도 자신의 기억 속의 가족과 작별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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