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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19. 2022

바나나 똥

13살 지구인이야기(5)

아이들이 어릴수록 한 번에 웃길 수 있는 주제가 있다. 방귀, 엉덩이, 똥이다. 그래서 실제로 인기가 많은 그림책 중에는 주제에 대한 책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 귀여운 주제 덕에 한바탕 소리 내어 웃었다.

 

12살에 사춘기를 시작한 아이는 13살 되어 더 까칠할 때가 많아졌다. 까칠해진 아이는 일단 나를 째려본다. 신호가 오면 나는 '아.. 지금 내가 한 말은 잔소리로 들렸구나' 하고 잠시 멈춘다.

아이가 24시간 이런다면 아마 나처럼 예민한 엄마는 우울증에 빠져 머리에 먹구름을 데리고 살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가끔씩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 이런 나의 마음을 해독시켜준다.

마치 서랍이 여러 개인데 어릴 적 내게 보여주지 못한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으... 급똥!"을 외치며 아이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느닷없이 갑자기 화장실 문을  열더니 소리친다.

"엄마! 아주 건강한 바나나 똥이야!"

듣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오! 시원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의 똥 소개는 끝나지 않았다.

잠시 후 또 문을 열더니 "엄마! 둘째가 나왔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이 더 웃겨 소리 내어 웃고 만다.

"그래서 시원하니?" 화장실에서 나온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응! 엄마 잠깐 나 봐봐!"

뒤돌아 아이를 돌아보니 "나의 쾌변 따봉!" 몸짓을 넣어가며 외친다. 순간 아이도 나도 소리 내어 웃었다.

아마 며칠은 아이가 화장실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바나나가 나왔는지 몇째까지 나왔는지 귀를 기울이게 될 것만 같다.


가끔 보여주는 이런 유쾌함에 아이에게 서운했던 마음들이 하나씩 녹아린다. 사춘기 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가끔 서운하다 가끔 웃고 가끔 복해하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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