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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19. 2022

그건 그때고

13살 지구인 이야기(14)

두 달이나 되는 긴 겨울 방학이 끝나간다. 아이의 얼마 남지 않은 방학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뭐든 해주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오늘 엄마랑 오름 안 갈래?"

"싫은데?" 한마디로 거절하는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인다.

"지난번에 네가 먼저 언제 한번 예전처럼 오름에 가보자고 했잖아." 내 목소리가 툴툴해진다. 

"그건 그때고, 유효기간이 지나버렸어."

어떤 여지도 없다는 듯 아이는 단호하다.


유효기간이라니!

아이의 대답에 웃음이 터진다. 어쩔 수 없다. 호의가 거절당한 나는 결국 오늘도 아이와 집이다.


유효기간이라는 말을 들으니 사춘기 아이들은 마음을 설명하는데 퍽이나 유용한 단어라는 생각이 스친다.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은 유효기간이 짧다.

짜증 나는 마음도 기분 좋은 마음도 그리 오 지속되지는 않는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마음의 변덕이 왔다 갔다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빡공'을 외치다가도 금세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푸념과 짜증을 늘어놓기도 한다. 기분 좋아서 외출을 했다가도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별 것 아닌 작은 일들에 신이 나 하기도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는 짜증이고 친구의 말 한마디는 관심이다.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용할까. 기억도 유효기간이 지나면 폐기할 수 있다면 아픈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 좋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다음에는 아이가 툭 던져주는 쿠폰 같은 호의들은 유효기간과 내용을 분명히 하고 잘 적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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