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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10. 2022

카드 말고 현금

13살 지구인 이야기(25)

"머리를 좀 잘라야겠다."

"오늘 학교 끝나고 미용실 갈까?"

아이의 앞 머리카락이 눈썹을 가릴 정도로 어느새 많이 자라 있었다. 날이 더워지는 요즘이라 더 신경이 쓰여 미용실에 가자고 말을 먼저 꺼냈다.

좋다고 대답한 아이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엄마, 오늘은 나 혼자 가서 자르고 와볼까?" 라며 새로운 제안을 했다.

'드디어 미용실도 혼자 가보겠다고 할 만큼 컸구나.' 늘 동행을 했었지만 오늘은 스스로 해보겠다는 말이 퍽 기특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아이에게 신용카드를 주기는 그래서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잘 쓰지 않는 체크카드 하나를 주고 미용실 앞에 내려주었다. 그 사이 나는 진료를 미뤄두었던 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혼자서 잘했을지 신경이 쓰여 계속 폰만 보게 된다.

가서 뭐라고 말하며 머리를 잘 달라고 했을까? 계산은 잘할 수 있을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끝났나 보다.'하고 기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 카드에 돈이 부족하다는데?" 상상도 못 한 첫마디였다.

"진짜? 바로 확인하고 엄마가 돈을 넣을게. 기다려."

이게 무슨 말인가? 안 쓰는 체크카드지만 아이에게 가끔 사용하게 할 때가 있어서 돈을 넣어두는 카드였다.

확인해보니 일단 돈이 없는 게 맞다. 바로 이체를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달 이체할 건이 있어 이체가 편한 이 카드에서 이체를 했던 기억이 났다.

'아이코!'  13살 나이에 카드결제가 거부되는 경험을 한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에게 이체를 하고 사과의 톡을 보냈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응"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만났다. 단정하게 짧게 자른 머리를 보니 시원해 보였다. 머리를 혼자 자르고 와서 대견하는 말과 엄마가 돈이 없는 체크카드를 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엄마가 확인도 안 하고 카드를 줘서 미안해. 많이 놀랬지?"

"응. 괜찮아."

"그런데 너 대단하다. 나라도 괜히 창피하고 그랬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차분하게 전화하더라?"

"다음에도 혼자 갈게. 그런데 다음에는 그런 경험 하고 싶지 않아. 카드 말고 현금으로 줘."

"그래 다음에는 꼭 현금으로 줄게."


오늘 나는 아이가 당황해서 만났을 때 엄마는 왜 확인도 안 하고 그 카드를 줬냐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해줬다.

아이의 실수를 부모가 이해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아이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아이가 부모인 나를 이해해주는 일이 많다.  아이의 이해가  미안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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