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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15. 2022

말을 삼키니 입이 쓰다

13살 지구인 이야기(27)

퇴근 후 아이의 학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걸어 나오는 아이의 얼굴 표정이 평소와 달리 어둡다 못해 잔뜩 찡그러져 있다. 다가오는 걸음걸음이 무겁고 발이 끌려오는 수준이다.

"무슨 일 있니?"

"몰라. 엄마는 몰라도 돼" 아이는 평소와 달리 차가운 짧은 외마디 말로 대답하며 앞서 걸었다.

이런 일은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계속 신경이 쓰여하던 중 이유를 알았다. 오늘 학원에서 단원을 마치고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점수가 퍽 낮았던 모양이다.

"시험 때문에? 못 봐도 괜찮아."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은 수준이 아니니까 그렇지!"

"엄마도 시험 못 본적 많아."

"그 정도가 아니라고!"

아이는 괜찮다는 나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날을 세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 타서도 혼잣말을 하며 화를 삭이지 못한 듯했다.

운전을 하며 차 뒷자리에 앉은 아이의 혼잣말에 레이더를 세워 본다. 수학이 싫고 짜증 난다며 툴툴거렸다.

"시험이야 알고 있는 것을 틀릴 수도,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야."

아이를 달래려 시작한 대화 하면 할수록 내 기분까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계속 신경질을 부리니 한 켠에서는 학원만 다닌다고 공부가 다가 아니다 스스로 배운 것을 익혀야 되는 건데 그러지 못해서 시험을 못 본 게 아니냐고 버럭 큰 소리를 쏟아내고 싶은 마음까지도 일었다.

하지만 말을 삼켰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내게 원한 것은 속상한 자기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 아이도 잘하고 싶었는데 잘 안돼서 화도 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아이가 혼자 화를 삭일 수 있게 내 쓴 말을 삼키며 기다렸다.  역시나 말을 삼키니 입안이 다.  

이럴 때는 일단 맛있는 것을 먹어야 기분이 좋아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햄버거 가게로 운전했다.

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와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받아 든 아이스크림을 조히 아이에게 건넸다. 말없이 받아 든 아이가 차 뒷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나게도 먹는다. 조용한 차 안. 아무도 말없이 먹어서일까. 아이스크림 콘의 과자 부분이 저렇게 아삭한 소리를 낼 수도 있구나 처음 느꼈다. 아이도 나도 아이스크림 콘을 먹으며 잠시 단맛에 젖는다. 무거웠던 공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역시 달달한 거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네" 드디어 아이의 기분이 풀린 신호가 왔다.

"맛있지? 집에 가서 햄버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집에 와서 햄버거까지 다 먹은 아이가 다 먹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 화났어? 아까는 미안해."

"괜찮아."

"엄마는 다만 시험 결과 때문에 네가 너한테 벌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다시 풀어볼게."

아이는 자기대로 학원 문제지를 펴고 끙끙거리더니 재시험에서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다시 밝아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공기가 차가워지다 못해 얼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잘못하면 큰 말싸움이 일어나서 며칠은 갈 듯한 위기 상황이 있다. 이럴 때는 일단 부딪힘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쏟아내는 것을 지켜봐 줘야 한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 않다. 부모인 나의 잘못이 아닌데 마치 부모인 내가 잘못한 대상이 되어 화풀이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래도 그때 딱 참고 말을 삼키면 아이는 자기대로 기분을 조절하고 한 뼘 정도는 스스로 커간다. 말을 삼키면 쓰지만 쓴 만큼 아이는 자라고 아이와 나는 건강하게 또 하루를 마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내 입은 오랜만에 썼다. 좋아하는 커피로 쓴 입을 달래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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