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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13. 2022

한라산이 내게로 왔다

지난주는 낮 최고 기온이 20도를 넘더니 내가 있는 제주도 어제 비가 온 뒤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가을이 가나 싶은 오늘. 나의 가을을 되돌리기 해본다. 이번 가을에 다녀왔던 곳 중에 가장 담아두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시오름'을 꼽을 것이다.


몇 주 전 서귀포에 있는 치유의 숲을 다녀왔다. 몇 해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다 하면서도 사전 예약을 하고 가는 곳이었던 지라 게으름에 이제야 처음으로 가봤다. 숲으로 들어서니 다양한 길들이 많다. 안내도를 바라보며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던 우리는 숲길을 따라 걷다 오름도 갈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오름 쪽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너 시오름이라고 들어봤어?" 서로 처음 듣는 오름이었다. 그래도 숲도 걷고 오름도 오를 수 있다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숲길로 들어섰다.

높은 가을 하늘, 햇빛이 적당한 날이어서 그런지 들어서는 입구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에서 내 존재가 주눅이 들기는커녕 누가 나를 온몸으로 감싸 안아주는 따뜻함이 들어 마음이 편안하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갔을까.

"이거 무슨 소리야?"

숲길을 따라서 걷는데 끼익 끼익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귀를 쫑긋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이 온통 키가 큰 나무뿐이었기에 자연스레 시선은 위로 올라간다. 찾았다! 나무 두 개가 윗부분에서 만나 자라게 되면서 부딪히는 소리였다.

"세상에. 나무끼리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였다는 거야?"

다른 제주의 숲이나 오름길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경한 소리였다. 그렇게 그 나무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차분할 것만 같은 가을의 숲은 어딘지 모르게 활동적인 소리들이 많았다. 나무에서 낙엽이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 큰 나무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 그 바람에 나무가 흔들거리며 만드는 소리, 바스락 거리는 작은 동물 소리. 이 숲은 보는 것도 많지만 들을 것도 많은 숲이었다.


자연을 나와 즐기다 보면 오감을 모두 활용하게 된다. 눈이 보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귀로 들리는 소리들에 집중하고, 엑스레이를 찍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숨을 참아보면 나를 살리는 공기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오름 정상까지 200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금방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경사가 있는 가파른 길이었다. 숲길을 걸을 때는 나오지 않던 땀이 목덜미를 따라 흐르고 계단 하나하나에 체중이 실린다. 힘이 든다고 생각할 무렵. 전망대가 나타났는 그곳에 발을 딛기도 전에 '와!' 외마디 외침이 나왔다.

가을의 한라산이 내게로 쏟아질 것처럼 당당히 서 있었다. 한라산이 내게로 온 착각이 들었다. 한라산이 이렇게 크고 웅장하구나 한 번 감탄하고, 산의 능선과 가을이라는 계절이 만들어낸 한라산의 모습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비슷한 때에 전망대에 오른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인지 말없이 감탄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다. 감탄을 마치니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이 일며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라산을 오르지 않고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을 때는 고근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오름으로 바꾸어 나의 오름목록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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