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시간을 내어 학교에서 영어 학습지원이 필요한 아이 두 명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 두 명 다 처음에는 영어 단어를 전혀 읽지 못했다. 소리와 철자의 관계를 먼저 알려주고 쉬운 단어부터 배우고 익혀 간단한 문장을 해석하는 연습을 일 년 동안 해오고 있다.
영어 읽기를 할 때 파닉스가 적용되지 않는 단어나 익숙지 않은 단어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럴 때 내가 읽고 소리 내어 따라 말해보게 하고 아이 스스로 읽어보게 하면 곧 잘 따라 하고 익혔다. 조금씩 읽기가 가능해지자 단어를 내가 알려주지 않고 첫소리 힌트를 주면서 아이 스스로 읽게 했다. 점점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나고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나니 배우고 익히는 양도 훌쩍 늘었다. 회의나 출장으로 못하게 되는 날은 아이들이 아쉬워해서 따로 시간을 약속해 꾸준히 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노력하는 만큼 보람된 시간이다. 가르친 만큼 확실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사에겐 큰 위로다.
오늘도 방과 후에 만난 아이들과 공부를 하는데 아이가 처음 나온 단어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모르나 싶어 첫소리 힌트를 주려던 순간 아이가 나를 다급하게 막았다.
"선생님 이건 제가 해볼게요."
아이는 내 도움을 지연시키고는 혼자서 파닉스 규칙을 적용해서 옆 빈칸에 우리말로 써보더니 완성하고는 소리 내어 발음해보곤 금세 뜻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스스로 알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뺐을 뻔했구나 싶었다. 언제든지 친절하고자 하는 게 맞지만 지나친 친절,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동의 없는 친절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색한 몇 초간의 침묵과 멈춤을 편안히 지켜봐 주는 교사일 것이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나보고 자기 스스로 해보겠다며 나를 멈추게 할 때 아이의 표정이 떠오른다. 아이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