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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3. 2022

제가 해볼게요

방과 후 일주일에 하루 이틀 시간을 내어 학교에서 영어 학습지원이 필요한 아이 두 명을 가르쳐주고 있다. 아이 두 명 다 처음에는 영어 단어를 전혀 읽지 못했다. 소리와 철자의 관계를 먼저 알려주고 쉬운 단어부터 배우고 익혀 간단한 문장을 해석하는 연습을 일 년 동안 해오고 있다.


영어 읽기를 할 때 파닉스가 적용되지 않는 단어나 익숙지 않은 단어들을 만나면 아이들은 머뭇거린다. 그럴 때 내가 읽고 소리 내어 따라 말해보게 하고 아이 스스로 읽어보게 하면 곧 잘 따라 하고 익혔다. 조금씩 읽기가 가능해지자 단어를 내가 알려주지 않고 첫소리 힌트를 주면서 아이 스스로 읽게 했다. 점점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나고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나니 배우고 익히는 양도 쩍 늘었다. 회의나 출장으로 못하게 되는 날은 아이들이 아쉬워해서 따로 시간을 약속해 꾸준히 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노력하는 만큼 보람된 시간이다. 가르친 만큼 확실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사에겐 큰 위로다.


오늘도 방과 후에 만난 아이들과 부를 하는데 아이가 처음 나온 단어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모르나 싶어 첫소리 힌트를 주려던 순간 아이가 나를 다급하게 막았다.

"선생님 이건 제가 해볼게요."

아이는 내 도움을 지연시고는 혼자서 파닉스 규칙을 적용해서 옆 빈칸에 우리말로 써보더니 완성하고는 소리 내어 발음해보금세 뜻을 알아차렸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스스로 알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뺐을 뻔했구나 싶었다. 제든지 친절하고자 하는 게 맞지만 지나친 친절,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동의 없는 친절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색한 몇 초간의 침묵과 멈춤을 편안히 지켜봐 주는 교사일 것이다.

글을 쓰며 생각하니 나보고 자기 스스로 해보겠다며 나를 멈추게  때 아이의 표정이 떠오른다. 이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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