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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30. 2022

첫눈! 너란 녀석

나른한 오후. 뇌가 정지된 듯 멍하고 춥고 건조해진 날씨 탓인지 안구건조증이 오늘따라 심해 인공눈물을 넣어보지만 시원치 않다. 별다를 것 없는 무채색 같은 오후, 아이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좀처럼 거는 일이 없는 13살 아이라 무슨 일인가 싶어 건조한 눈을 크게 뜨고 받게 된다.


"엄마. 첫눈 왔어!" 아이의 목소리는 잔뜩 신이 나 있다.

"첫눈?" 하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 교무실 창문을 바라보니 눈이 오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안 보이는데? 금방 봤어?"

"아까 내리다가 금방 없어졌어." 통화는 내내 아이의 목소리에서 설렘이 전해진다.

내리는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이 덕분에 창밖도 바라보고, 하늘도 바라보며 마음쉬는 틈이 생긴다.


퇴근길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 눈이 내리며 차 창문에 내려앉는다. 양은 많지 않지만 하얗고 조그마한 것이 눈이 틀림없다.

"눈이다! 엄마도 이번 겨울 첫눈을 오늘 봤네." 아이는 또 내리는 눈을 보며 좋아한다.

"그런데 아까 첫눈 때문에 엄마한테 전화한 거였어?"

"응. 학원에서 나왔는데 약간 눈이 내렸어. 엄마한테 말하고 싶었어."

첫눈이 온다고 전화를 받을 수 있다니. 언제까지 첫눈이 내리면 나에게 전화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첫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나여서 꽤나 행복한 엄마가 됐다.


눈이라는 게 이상하다. 수많은 기상현상이 있건만 사람들은 매해 눈에 '첫'이라는 글자를 더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모 누군가를 떠올리고 연결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멀어진 사이라고 할지라도 어쩐지 첫눈이 내리는 날에 연락을 하면 다시 가까워질 것만 같다.


"눈이 쌓이진 않을 것 같아."

"칫! 첫눈! 너란 녀석. 좀 쌓여주면 안 되나?" 아이는 눈에 진심이다.

혹시나 눈이 쌓여 출근길 불편할까 염려하는 엄마와 눈이 쌓여서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눈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같은 눈을 다른 마음으로 보며 퇴근한다.


집으로 돌아와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 벽에 달았다. 올해 첫눈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더해지니 겨울이 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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