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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Dec 04. 2022

흘러넘치는 유쾌함

13살 지구인 이야기(71)

늦은 저녁 아이의 방에서 낯선 소가 들린다. 혼자 있는데 말소리 같은 게 들려서 가보니 아이가 보면대 사람 얼굴을 그린 종이 하나를 올려놓고 그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종이의 그림을 보니 잔뜩 찡그린 얼굴 하나가 있다.

"뭐 하는 거야? 그림 그려?"

"아니. 1:1 돌파 연습이야."

아이의 말인 즉, 자신이 그려놓은 얼굴이 상대방 수비수라고 생각하고 농구 연습하는 거라고 했다.

보면대를 앞에 두고 농구공을 튀길 수 없으니 공을 어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그걸 보는 나는 웃겨서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고지식한 나와는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유연하고 쾌한 면이 많다. 외동이라서 집에서 엄마와 단 둘이 지내는 것이 심심할 만도 한데 다양한 것들을 만들며 재밌게 놀고는 다. 택배 상자를 두면 그걸 잘라서 아이언맨 슈트라며 만들기도 하고, 함정이라며 각종 끈을 이어 자기 방에 나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도 다. 내가 필요한 순간은 완성한 후 자신이 만들거나 그린 것들을 보라고 하면 잘 봐주고 그것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주면 된다.


하루 종일 놀다가도 밤에 잘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 많이 못 놀았다고 잘 수 없다고 버티는 아이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데도 이렇게 보면대에 얼굴을 그려놓고 노는 것을 보니 아이는 감각을 아직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아이의 이런 유쾌한 면이 좋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분명 우리는 행복하게 살도록 태어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 하루지만 스스로 이렇게 유쾌함을 만들어간다면 인생에 웃음이 스며들지 않을까. 그 웃음이 누군가에게는 또 웃음을 주어 돌고 도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도 싶다. 아이의 흘러넘치는 유쾌함에 잔뜩 흐렸던 날씨와 달리 내 기분도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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