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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07. 2023

스토커야?

어린이날. 하루종일 비가 내렸던 하루. 어느 순간 너무 많이 내리니 비가 눈이 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내리는 다른 모습을 발견한 오늘처럼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늘 몸과 마음이 분주했던 어린이날도 다르게 느껴진다. 뭐 사달라는 것도, 하자는 것도 없는 그런 날이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어린이날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날을 챙겨줘야 하는 거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아직은 그래도 어린이가 아니냐며 단호했지만 딱히 뭘 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별일 없는 무탈한 저녁.


"어린이날 선물!" 아이에게 초코볼 한 박스를 물 한잔 건네듯 무심히 내밀었다. 

"이걸 다? 이거 하나에 2000원이나 하는 건데. 한 박스나?" 생각지 못한 선물에 놀란 것인지 양에 놀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이는 제법 놀란 듯했다.

"엄마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누가 고급 초콜릿이라고 줘도 안 먹는 엄마와 달리 내 아이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한다. 언젠가 아이가 학원에서 다녀오는 길에 이 초콜릿을 사 와서  먹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때 상표를 기억했다가 다음에 사줄 일이 있으면 사야겠다고 메모를 해놨더랬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엄마 내 스토커야?" 웃으며 초콜릿을 하나 꺼내 먹었다. "

"엄마는 선생님 말고 편의점 주인해도 잘할 것 같아.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아니까." 아이의 칭찬에 마흔 중반의 엄마는 기분이 좋아진다. 

스토커. 무시무시한 말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 나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귀여운 스토커가 될 작정이다. 안보는 척,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하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할 만한 것들을 무심하게 툭 던져주고 저 반달이 되는 웃음 한번 보면 된다. 아이에게 스토커라 불릴 만큼 항상 레이더를 향하다 못해 아이 머리 위에 드론을 띄운 양 지낸다. 아이에겐 항상 아빠라는 한쪽 손은 비어있으니 내가 나머지 손마저 따뜻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한다. 이런 날은 더욱이 말이다.


"엄마 우리 한부모야?" 언젠가 아이가 학교에서 배웠다며 나보고 우리 같이 사는 사람들이 한부모 가정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별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오랫동안 마음에 둔 고민 하나를 누군가에게 비밀처럼 꺼내놓은 표정을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우리가 사는 모습이 다른 가정과는 조금 다르구나 알았고 그게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부모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야 내가 번만큼 아껴 쓰면 됐지만 아이의 마음이 늘 신경이 쓰였다. 자기를 찾지 않고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아빠를 미워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마음을 달래줘야 했고, 초과 근무나 휴일 근무로 내가 바빠지면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근무시간에는 몰두해서 일을 마쳐야 했다. 일이 있어 저녁에라도 나오게 되면 혼자 있을 아이가 늘 마음이 쓰였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 아이가 한 손의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몸도 마음도 바빠야 했다. 그렇게 한부모로 4년. 다행히 내 마음씀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인지 아이는 건강하고 무탈하게 중학교에 잘 적응하고 지내고 있다. 지난 달이였던 것 같다. 아이와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순간.

"엄마 우리 한부모잖아. 그래도 나름 꽤 행복한 것 같아."

"우리가 안 행복할 이유가 뭐가 있니?"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비어있는 자리대로 채워진 자리는 채워진 대로 하루하루 웃을 일 만들면서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한부모지만 안 행복할 이유보다 행복할 이유가 더 많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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