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사로국의 통일과 혁거세 거서간 – 진한 12국을 잇다
신라는 지증왕에 이르러서야 국호가 확정되었지만, 그 뿌리는 훨씬 이전의 사로국에 닿아 있다. 사로국은 단순한 연맹체가 아닌, 내재적 성장과 정치적 통합을 통해 고대국가 신라로 발전한 진한의 정통 계승체였다.
이 장에서는 신라의 실질적 전신인 사로국의 성립과 통합 과정을 중심으로, 그 출발점에 선 인물인 혁거세 거서간의 등장을 분석하고자 한다.
사로국은 진한 12국 가운데서도 처음부터 중심 세력으로 기능했으며, 이후 한 번도 외세나 타 세력에 의해 정통이 교체된 적 없이 신라로 곧장 계승되었다. 진한의 중심지가 외부 세력에 의해 대체되거나 분열된 사례가 있는 다른 삼한 지역과 달리, 사로국은 내재적 성장과 지속적인 정치 연속성을 통해 진한의 정통을 유일하게 유지한 사례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로국의 통일은 단순한 흡수가 아닌 정통의 확대라 할 수 있으며, 신라는 그 직접적인 계승국이었다.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는 사로국의 정치적 통합과 정통성 확립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기능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여섯 촌의 촌장들이 모여 임금을 세우려 하던 중, 양산 기슭 나정(蘿井)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절하고 사라진 자리에 자줏빛 알이 있었다.
알을 깨니 온몸이 빛나는 사내아이가 나왔고, 그 빛에 새와 짐승이 춤을 추었으며, 하늘에서 비가 내려 그의 몸을 씻겼다. 이 사내가 바로 박혁거세였다. 그는 촌장들의 합의로 왕에 추대되었고, 이는 연맹체 내부의 협의 정치 구조가 신성성과 결합하여 왕권으로 전환되는 정치적 순간이었다.
또한 그의 왕비가 된 알영 부인은 알영정(閼英井) 근처에서 용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한 존재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는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구조를 통해 왕통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신화적 기원을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통합 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박혁거세는 단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사로국 정치 체제의 제도화를 상징하는 실질적 기점이었다.
사로국 정치 구조의 원형 사로국은 여섯 마을, 즉 양산촌, 고허촌, 진지촌, 대수촌, 금산촌, 명활산촌으로 구성된 연맹체에서 출발하였다. 각 촌은 고유한 권한을 지닌 촌장이 다스렸으며, 이는 사로국 초기 정치 체제가 협의 기반의 합의제였음을 시사한다. 혁거세는 이러한 촌장들의 합의에 따라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이는 곧 정치적 통합의 시작이었다. 박혁거세의 즉위는 초월적 신화와 더불어 정치 제도화의 첫 단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왜 경주였는가 사로국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경주 일대, 즉 낙동강 동편에 위치한 내륙 교통과 해상 교역이 만나는 전략적 요지였다. 북으로는 낙동강 상류와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울산 포구와의 연계로 동해안과도 이어졌다. 이러한 입지는 사로국이 진한 전체에서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던 교통·경제적 기반을 제공하였고, 물산의 집산지로서 다른 소국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했다.
진한에서 신라로의 연속성 사로국의 문화는 진한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신라 초기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경주 포석정, 금령총, 서봉총 등의 유적은 사로국~신라 초기 문물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와질토기와 점토대토기가 함께 출토된 사례는 진한의 토기 문화가 사로국을 거쳐 신라로 계승되었음을 시사하며, 목곽묘·석실분 등 묘제의 진화는 정치·사회 구조의 발전과 일치한다. 또한 사찰 유적의 흔적은 불교 수용 이전에도 일정한 종교적·제의적 체제가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중심을 향한 흡수와 연계 사로국은 단순히 여섯 마을의 연맹체를 넘어서, 점차 진한 12국 전체를 아우르는 구심력으로 작용하였다. 다른 진한국가들이 외부 침입이나 내부 분열로 쇠퇴해 가는 가운데, 사로국은 촌장 간 협의를 제도화하고 왕권을 정비하면서 통합을 주도하였다. 사로국의 통합 방식은 군사적 정복보다는 정치적 흡수와 네트워크 중심의 확장에 가까웠으며, 진한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완성하게 되었다.
박혁거세 이후 사로국은 석탈해, 남해, 유리, 탈해, 파사, 지마, 일성, 아달라 등 이사금들이 왕위를 이어가며 정치 체제를 점차 안정시켜 나갔다. 이들 왕들은 연맹적 구조 안에서 촌장 간 협의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왕권의 위상을 높여갔다.
석탈해는 비박씨 출신으로 즉위하여 연맹의 포용성과 대표성 확대를 상징하였고, 남해 이사금 시기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며 외적 방어의 초기 체계를 마련했다. 파사 이사금은 궁성과 목책을 축조하고, 사찰과 도로를 정비하며 왕경 체제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달라 이사금 시기에는 성벽 축조를 통해 방어 거점을 강화하는 등 물리적 중심지의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내물 이사금 시기의 마립간 체제로 이어지는 정치·제도적 통합의 초석이 되었다.
이 시기 한반도 북부에는 고구려가 압록강 유역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동해안 북부에는 옥저와 동예가 각각 독립된 부족 연맹체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서남부의 백제는 마한 목지국을 흡수한 후 소국 연맹체에서 벗어나며 독자 왕권을 형성 중이었고, 낙동강 하류의 가야 지역은 여전히 철 생산을 중심으로 한 군장 연합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국가들 역시 각자의 문화와 정치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었지만, 외래 왕권이나 군사력 중심의 체제였으며, 사로국처럼 내재적 성장과 합의제 구조를 통해 고대국가로 발전한 사례는 드물었다.
사로국은 진한의 유산을 계승한 정통의 중심이었다. 혁거세의 신화는 단순한 건국 전설이 아니라, 공동체의 통합과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억의 구조였다. 사로국은 외래 세력의 지배가 아닌 내부 역량에 의해 성장한 자생적 고대국가였으며, 그것이 바로 신라의 기원이자, 한민족의 정통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역사적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는 첫 화 고조선 내용에서 밝힌 것처럼 최소한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민족적 정체성의 지속.
둘째, 후속 국가의 주도적 형성.
셋째, 후계 국가의 정통 자각과 계승.
넷째, 문화와 언어의 연속성과 발전.
이 네 조건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국가의 정통성과 계승을 판별하는 구체적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적 근거 또한 명확하다.
동 시기에 존재했던 고구려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부여의 후예로서 스스로 동명성왕(부여 동명왕)과의 계보를 강조하며 정통을 자각하였다. 이는 후계 국가의 정통 자각(조건 3)에 부합하는 요소지만,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고고학적 유물에 따르면 고구려는 예맥계 북방계 혼성 민족이 중심이었고, 언어 또한 현대 한국어 계통과 확연히 다른 부여어 계통으로, 언어·문화의 연속성(조건 4)에서는 충족되지 않는다.
또한 고조선 멸망 이후의 북방 이주민 세력으로 형성되었기에, 후속 국가의 자생적 주도 형성(조건 2)에도 한계가 있다.
마한의 경우에도 『삼국지』 동이전에 기록된 목지국이 중심 소국이었으나, 이를 계승한 나라는 백제였고, 백제는 목지국이 아닌 한강 유역의 위례성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내부 연맹체의 주도적 통합이 아닌, 외곽 소국에 의한 흡수로서 후속 국가의 주도 형성(조건 2)과 정통 자각(조건 3)의 측면에서 약점을 지닌다. 더욱이 백제는 이후 점차 한화(漢化)되어 중국 남조와 밀접한 교류를 전개했고, 언어와 문화의 면에서도 신라보다 독자성 유지 측면에서 후퇴하였다.
반면 진한은 중심 국가였던 사로국이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6촌 연맹체에서 출발하여 박혁거세의 즉위와 함께 정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석탈해, 파사, 아달라, 내물 이사금 등으로 이어지며 자생적 국가 발전을 이뤄냈다.
이 시기 유적 자료인 경주 일대의 와질토기·목곽묘·석실분 등은 문화의 연속성을 뒷받침하며, 신라어는 현대 한국어의 직계로 평가된다. 정치 제도에서도 화백회의의 연맹체적 요소에서 중앙 집권적 마립간 체제로 이행하며 국가로서의 주도 형성 조건을 충족하였다.
이처럼 진한–사로국–신라로 이어지는 흐름은 민족 정체성, 자주적 발전, 문화와 언어의 연속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유일한 계보이며,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 이르는 가장 자연스럽고 온전한 역사적 흐름임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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