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모든 것 (7)
위임전결이란 단어는 '위임'과 '전결'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해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임은 어떤 일을 책임 지워서 맡긴다는 뜻이고, 전결은 결정권자가 마음대로 결정하고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주주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한, 대표이사는 회사와 관련한 모든 일에 대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세한 모든 업무까지 다 챙기고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죠. 직원이 볼펜 하나 사는 것까지 결정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가 아닌 이상 대표이사가 모든 걸 챙기기 어렵기 때문에 위임전결을 필요로 합니다. 업무의 중요도와 경중에 따라 다른 임직원에게 책임 지워서 맡기고 그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위임전결입니다. 위임전결은 단순히 의사결정권 책임을 부여한다는 역할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혹은 어느 팀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일인지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도 해요. 회사 업무가 체계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셈이죠. 따라서 위임전결규정의 핵심 요소는 어떤 일을, 누구에게 결재받을 것인가가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회사만의 위임전결규정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그 틀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 볼게요.
먼저 어떤 업무인지 큰 범주 안에서의 정의가 필요합니다. 인사관리, 인감날인, 매출결의, 지출결의, 계약, 구매, 재고관리 등으로 회사 사정에 맞게 위임전결이 필요한 업무들을 구분해 줍니다. 먼저 상위 범주를 정했다면 그아래 하위 범주도 정해줍니다. 인사관리에는 휴가, 퇴직, 발령, 출장 같은 근태 사항뿐만 아니라, 재직증명서 발급 같은 하위 범주가 들어갈 수 있겠네요. 지출결의는 개인경비, 거래처 대금, 세금 납부 등으로 하위 범주를 구분할 수도 있고, 법인카드, 세금계산서, 영수증(고지서) 같은 지급수단이나 증빙에 따라 구분해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는 20만 원 이하, 20~100만 원, 100만 원 이상 같은 거래 금액 규모로 구분해주는 방법도 있겠고요. 어디까지 어느 팀, 누구의 결재를 받도록 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정하는 것이 편리할 것인가를 회사 상황과 업무 편의에 맞게 고민해보고 적절히 정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구분을 끝냈으면 자연스럽게 어느 팀, 누구의 결재를 받거나 참조에 포함시킬지 결재라인을 정하게 되죠.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너무 많은 결재라인은 타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결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요. 또 결재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지다 보니 꼼꼼히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다른 사람이 살펴봤겠지 라는 생각으로 대충 결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재 과정이 그저 요식행위가 되어버려서 안 하니 못한 절차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꼭 책임져야 할 사람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재라인 세팅이 가장 중요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실제 일하는 실무자와 그 관리자에게 최대한 권한을 많이 주고 스스로 책임감 있게 일하는 조직문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결재라인은 최대한 간략하게 하고, 불필요한 결재라인은 과감히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웬만한 실무는 팀장 선에서 결재를 끝내고, 그보다 정말 중요하다 싶은 업무에 한해서 그 상위 관리자까지 넣어 책임감 있게 결재하도록 합니다. 결재라인을 최대한 슬림화하는 거죠. 그리고 비용지출처럼 재무팀의 업무협조와 관리가 필요한 사항은 재무팀장의 합의를 받고 재무팀 실무자를 참조로 넣도록 합니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책임도 안 지는 10명의 결재를 받는 것보다 제대로 책임감 있게 보는 1~2명의 결재 또는 합의를 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만큼 의사결정도 빨라지게 되고요. 그리고 휴가처럼 직원 개인의 일신과 관련된 사항은 그냥 본인 전결로 끝내버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휴가만큼은 마음 편하게 쓰라는 조직문화가 반영되는 것이죠. 물론 제일 바쁜 날 팀원이 아무 말 없이 행방불명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휴가 일정을 팀장과 사전에 간단히 공유하고, 팀 공유 캘린더에 기록해 두는 등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겠지만요. 이처럼 위임전결규정에는 회사의 조직문화도 고스란히 녹아들기 마련입니다.
결재권자가 제대로 의사결정을 하려면 적절한 근거가 필요하겠죠. 그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필요서류를 결재기안에 함께 첨부해 주어야 합니다. 거래처에 대금 지급을 한다면 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 계약서 등이 필요할 수 있겠고, 계약을 맺고자 한다면 왜 그 업체를 선정했는지 다른 업체와 비교하는 견적서 등이 필요하겠습니다. 이런 증빙은 의사결정을 돕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적절한 회계처리와 세무신고에 주요 근거가 되니 제대로 받는 게 매우 중요해요. 기안을 올리는 직원 입장에서는 어떤 증빙이 필요한지 잘 모를 수 있으니, 위임전결규정에 필요서류가 무엇인지 함께 명시해 두면 원활한 업무처리에 도움이 됩니다.
공자 말씀 중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아들은 아들다운 것이다라고 답했다는데서 온 말이죠. 회사에 임금과 신하는 없지만, 관리자와 실무자는 있습니다. 잘 되는 회사는 관리자가 관리자답고, 실무자가 실무자답게 일하는 곳이라 생각해요. 관리자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자리이지 실무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실무자는 실무 하는 사람이지 그 일에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관리자는 관리에 집중하고, 실무자는 실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위임전결규정을 잘 만들어 둔다면 회사도 알아서 잘 굴러가지 않을까요?
한줄 요약 : 위임전결규정은 의사결정권 책임을 부여하는 목적뿐 아니라 기안자에게 어느 팀, 누구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도 하며, 회사의 조직문화를 드러내기도 하는 중요한 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