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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May 12. 2016

그래도 청춘,

누가 뭐래도 청춘이니까.

벌써 이렇게 됐나.

 이리저리 낙서를 끼적거리다가. 시간을 보고서 살짝 놀랐다. 수업을 마친 뒤 복습하겠다고 앉았는데, 정작 복습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핑계겠지만, 하고 싶어도 하지를 못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기 때문이다. 피곤하다면 잠이라도 진탕 잤을 텐데, 무섭도록 정신이 말짱했다. 그렇다고 놀자니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머릿속에 너무도 많은 걱정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이 12.5%로 나타났습니다.
1999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


 “공부는 잘 되냐?”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아버지는 무심한 어조로 물어보셨다. 물을 마시러 나왔던 나는, 굳어버렸다. 찬찬히 고개를 돌려 옆얼굴을 바라보았고, 표정을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지나온 삶의 세월에 가려져 무표정하기 그지없었다.

 “네, 그럭저럭..”

 “그럭저럭이면 곤란한데.”

 나는 아무 말이 없었고, 아버지 또한 그랬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한 마디 하셨다.

 “내가 널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네.”

나는 과연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나?

 모를 리가 없다. 이젠 TV불빛으로도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소리 죽여 한숨 쉬고, 내 방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이미 어린아이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누가 봐도 성인이었다. 자기 한 사람 몫은 해야 마땅한, 성인. 나는 과연 성인일까?



 “이거 먹고 해라.”

 어머니가 다소곳이 자른 과일을 접시에 담아 방으로 오셨다. 염치없게 이 무슨. 손사래 쳤지만 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접시를 디밀었다.

 “일단 먹어. 얘. 그럭저럭 되는 게 어디야? 너도 알았잖아. 쉽지 않으리란 걸. 젊어서 도전하기 싫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면 그게 진짜 문제지. 넌 한창이야. 팔팔한 청춘! 엄마가 네 나이였으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는, 유독 ‘청춘’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눈이 반짝거렸다. 그런데 꼭 어머니만 그러지는 않았다. 어린 아이들은 동경하는 눈빛으로, 연장자 어른들은 그윽한 눈빛으로 ‘청춘!’이라고 말하곤 했다.

청춘(靑春)이라.. 청춘. 그러네. 이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치 공부를 다 마치고 자리를 뜨기 전, 청년실업과 관련된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에 달린 덧글은 더 시간을 들여 읽었다. 정말 다양한 사연이 펼쳐졌다. 분노와 좌절이 주된 정서. 하지만 희망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댓글의 댓글'엔 좌절과 부정적인 비명소리가 길게 드리워졌지만.

 얼마 안 있어 집으로 가는 버스가 나타났다. 창밖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려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아이고, 하는 작은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려운, 주문 같은 감탄사다. ‘아이고’를 외치면 어쩐지 더 풀썩 앉는 느낌이고, 어쩐지 스트레스가 좀 더 많이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고, 뭔가 신명이 난다. 그래서 내겐 유쾌한 감탄사다.


가자, 가자!

 버스기사 아저씨는 속도를 내며 탄식하듯 외쳤다. 아저씨만의 주문이었을까. ‘아이고’가 내게 그러하듯이. 버스는 탄력을 받아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이 분주하게 펼쳐진다. 반짝반짝, 불빛이 여기저기 흐른다. 자동차들이 사방팔방 달려간다. 내 또래 청년들이 두꺼운 수험서나 전공서적을 팔에 끼고, 혹은 가방에 넣고, 바삐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탄 버스로 계속해서 누군가는 내리고, 누군가는 탄다. 아, 모두들 열심히 사는구나.


스펙.스펙. 청춘? 미래..? 우리는 어디 있는 걸까?

 우리네 청년들더러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8대 스펙’(학벌, 학점, 토익, 자격증, 수상경력, 어학연수, 봉사활동, 인턴경력)은 기본. 남들과 달라야 하니 이색 스펙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들은 ‘스펙타파’라느니, 직무와 상관없으면 크게 안 본다느니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없는 것보다야 낫지!’ 우리네의 의심은 가시질 않는다. 한창 좋을 젊은 날의 길고도 짧은 세월은, 스펙이 다 가져가지 않을까?


 기사 아저씨는 라디오의 볼륨을 한 칸 더 높였다. 평소 같았으면 싫었을 텐데, 오늘은 마냥 즐거웠다. 간만에 아무 생각 없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이 라디오의 초대손님은 'SNS 시인'이었다(누군지 기억은 안 난다. 누구인게 그리 중요할까. 그냥 들었다.).

 사회자가 시인에게, 오늘의 주제는 ‘청춘’이라 했다. 젊음의 끝자락을 사는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한편 자신도 아직 청춘이기에, 자기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네 청춘들을 향한 가슴 따뜻한 격려 또한 잊지 않았다. 나는 청취자로서, 그리고 청춘의 한 사람으로서, 지그시 미소 지으며 경청했다.

 1부 순서가 끝나고 2부에 ‘시 짓기’가 진행되었다. 나는 줄글은 써도 시는 영 생소했기 때문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하며 기다렸다. 시작되자마자 익살맞은, 풍자적인, 솔직한, 슬픈, 즐거운, 다양한 시들이 올라왔고 SNS시인은 그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을 골라 낭독해주었다. 나는 함께 울고 웃으며 감상했다. 어쩌면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 중 하나가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라디오 시는 개인의 정서를 노래하기도 했지만, 우리네가 처한 현실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 시를 들으며, 우리 사회에 널리 화자 되는 여러 말, 말, 말을 생각해본다. ‘문송합니다’, ‘헬조선’, ‘삼포세대’, ‘N포세대’, "젊은이들 눈이 높다”, "요즘 한국인들 헝그리 정신이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돈 없으면 애 낳지 말자”.. 아이고, 이런..

 나는 나지막이 탄식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듣던 라디오를 핸드폰으로 이어 들으면서.


늦저녁에도 청춘들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내린 곳은 대학 근처 번화가였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늦은 저녁인데도 수많은 청춘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제각각의 표정으로,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제각각의 몸짓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관찰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싱그러워보였다.

 그러다 길거리 즉석공연을 만났다. 이미 좀 진행되었는지,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가자! 길바닥에 나앉은 청추운들의 콘써-트!”

 허름한 기타를 멘, 허름한 두 청년은 익살맞게 소리쳤고, 사람들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들은 자작곡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다 같이 알만한 노래를 골라 함께 불렀다. 우리는 떼창을 했고, 한데 어우러져 청춘을 노래했다. ‘청년실업이다, 헬조선이다, N포세대다, 전부 꺼져!’라고들 소리쳤다. 곡 사이사이, 청중에서 아무나 나와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이내 속 이야기가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아파하고, 또는 즐거워하고, 또는 안타까워했다. 그 어떤 누구도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어 유감’, ‘너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너 뭐 해먹고 살려고?’'아프니까 청춘이다', '노오오오력을 해보세요' 따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 자기의 진솔한 삶으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희망을 이야기했다. 같이 힘을 내자고 했다. 뭉쳐서 구조를 바꿔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청춘이니까 아직 가능하다. 청춘이니까.

 함께 모인 사람들은 다들 말했다. '우린 청춘이니까 아직 가능하다'고. 늘 미래는 암울해보였지만 지금껏 잘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각자의 조언이나 이야기는 청춘이 청춘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 말을 나누며 우리 모두의 눈은 반짝거렸다. 가슴은 견딜 수 없이 두근거리고, 볼은 기대감으로 발그스레 달아올랐다. 현실에 짓눌렸던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젊기 때문에.



 “청춘.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네.”

 그곳을 빠져나오며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이 문장이 ‘오늘의 장원’이라고 했다. SNS시인의 평가가 지나가고, 진행자의 감상이 이어진다.

 “예전엔 ‘청춘’하면 꿈, 이상, 젊음 이런 걸 생각했는데 요즘 청춘과 연관된 단어는 참 우울해요. N포세대, 반값등록금, 스펙푸어, 비정규직..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자주 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청춘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SNS시인은 조심스레, 하지만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힘들죠.
하지만 좌절하긴 일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청춘,
누가 뭐래도 청춘이니까요.”


나는 지그시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곁으로 청춘남녀들이 지나간다. 참 아름답다.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말이에요."


나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청춘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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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본문의 청년실업률 12.5%는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에 발표된 '2월 실업률'입니다. 최근 발표된 '4월 실업률'은 10.9%. 그때도 '사상 최고'라더니 이번에도 '사상 최고'라네요..


사진출처

 www.pixabay.com(이하는 작가명)

표지: "Geralt"

2번: "husenjan"

4번: "coffeeNwaf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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