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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다릴께

왜 맘에 드느냐

추억 소환 1.

by 한명화

인터넷을 열다 만난 고구마 밭의 고구마 사진 한장은 아련한 추억을 끌어다 주었다

아주 어린 꼬맹이였던 기억 속의 풍경하나

어느 가을날

친구네 집 마당에 수확한 고구마가 가득하고 동네 아주머니들 여럿이 마루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그 마당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야들아!

너희들 다 이리 와서 고구마를 맘에 드는 걸로 하나씩 골라 가져 가거라'

우리는 놀다가 고구마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저마다 고구마를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가 고른 고구마가 예쁘다며

그곳에는 바로 위의 언니도 있었는데 언니는 조그맣고 똥그란 아주 작은 고구마를 집어 들었다

그게 제일 예쁘다면서

난 자기밖에 모르고 작은 고구마를 집어 든 언니가 너무 미웠다

좀 큰 걸 골랐으면 집에 가서 나눠 먹을 수 있을 텐데라며 망설이고 있는 내게

어른들이 너도 빨리 골라보라고 재촉하셨다

고구마를 고르기 위해 한두 발짝 떨어져서 천천히 고구마를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저 안쪽에 아주 커다란 고구마가 보였고 아주 커서 집에 가서 동생들이랑 나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제일 큰 고구마를 집어 들었다

어른들은 깜짝 놀라며 욕심도 많게 제일 작은 꼬맹이가 힘에 이기지도 못할 큰 고구마를 골랐다며 크게 웃으셨다

빙그레 웃으시던 친구 어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넌 그 고구마가 왜 맘에 드느냐'라고

'집에 가져가서 동생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큰 걸 골랐다'라고 하자 친구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었다

아마도 고구마를 장난 삼아 골라가게 하려 함인지 아니면 아이들의 심리를 보시려 일부러 그러셨는지 어른들은 아이들이 고르는 고구마를 유심히 보고 계셨고 고구마를 고르면 그 고구마에 따라 평을 하셨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고구마가 생각이 나고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교육자로서 살아온 지난 30여 년의 날들에 어린 유아에서부터 초, 중, 고, 젊은청춘들 그리고 군인들과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전하는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됨됨이를 바로 알기 위해 늘 교훈처럼 그날의 고구마 고르기를 되새겼었다

그곳에 계셨던 아주머니들은 욕심쟁이라며 웃으셨는데 친구 어머니께서는

'너는 그 고구마가 왜 맘에 드느냐'라고 물으시고는 꼬맹이의 속 마음을 알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목소리를 기억하며 겉모습 만이 아니라 속 마음까지도 알아주려 노력했던 날들을 뒤돌아 보았다

우연히 마주한 사진 속 고구마를 바라보며 아주 어린 꼬맹이였던 어느 가을날의 풍경 하나가 떠올라 빙그레 미소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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