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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바람 붓

눈 편지

by 한명화

창밖

눈이 내린다

펑 펑

어느 사이 운동장에 하얀 양탄자를 깔았다

온 세상의 고뇌 다 덮어 버릴 듯이


잠깐 눈 구경 나갔다는 딸네미 전화

운동장을 보세요 라고

예전의 그 자리에 다시 새긴 이쁜 마음

사랑해요 라고

1997년인가

오늘처럼 펑펑 눈 내린 아침

작은 꼬마 딸아이는

눈사람 만들겠다 운동장으로

한참 지난 후 잘 놀고 있나 내려다본 그곳에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눈 위에 편지 쓰고

글 끝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펑펑 눈 내린 새하얀 운동장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은데

어느 사이 찰나의 날들이 가고

훌쩍 성인이 된 딸이 쓴 눈 편지

사진첩 속 옛 사진도 꺼내어 보며

같은 운동장 같은 눈 편지에

가슴 가득 따스함 끌어 담으며

감사한 지난 세월 주마등 되어 간다

입꼬리 귓가에 걸어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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