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다릴께

하늘이 그만 떠나라 고

by 한명화

봄비가 내린다

아주 촉촉하게

어제까지 애태웠던 산불의 기세

어쩔 것인가

하늘이 그만 떠나가라는데


작은 실수가 불러온 대형 산불은

많은 날들 인간의 수고를 비웃듯

방향을 바꿔가며 불어 대는 바람 앞에

붉은 악마의 날갯짓에 세력을 불어넣고

아무 잘못 없이 신선함을 선물하던

수많은 초록이들이 화마 앞에 울부짖고

땅속에서 평화롭던 수많은 생명들

그저 이유 없이 사라져 가고

숲을 터전 삼아 뛰어놀던 다람쥐랑 청설모

숲 속의 날들을 노래하던 산새들

달려드는 불덩이 속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번 산불의 회복은 100년의 시간은 지나야

회복이 다 된다는데


대를 이어 일귀 온 가족의 역사

한 줌의 재가 되어 망연자실한 모습

어찌 그 아픔을 나눈다 하겠는가

어찌 그 마음을 이해한다 하겠는가

다 타버린 집터 앞에서 멍한 시선으로

까만 집터를 바라보고 계시던 94세의 어르신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괜찮은데

젊은 사람들 이렇게 동네가 다 타버렸으니

어찌 살꼬' 라시는 말씀

집이 재가 된 이 상황에서도 이웃을 먼저 걱정하시는 우리네 정스런 모습 보며 어르신의 그 멍ㅡ하신 눈빛이 가슴에 박힌다


비가 내린다

서쪽하늘에 먹구름도 펼쳐진다

어서 바삐 달려서 온 산에 내렸으면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냥

아직도 낙엽 속 꼭꼭 숨은 불씨도

모두 찾아내어 다 씻겨 주었으면

뜨겁게 달궈진 숲 속의 세상을

시원하게 목욕시켜 주었으면


봄비가 내린다

산불 진화로 탈진해버린 수많은 손길들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주룩주룩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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