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다릴께

평생을 걷고 또 걸어서

by 한명화

길에 들어온다

어미의 몸속을 떠나 세상 밖으로

하늘을 보고 누워 울면 해결되는 그때

몸을 뒤집고

바닥을 기고

뭐든 잡고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다가

겨우 한발 내딛고는 박수갈채에 희망 싣고

걷고 뛰고 내 달리고

세상을 움켜쥐려 숨 가쁘게 길에 매달린다

누가 높이 달리나

누가 멀리 달리나

누가 어깨가 올라가나

누가 어깨를 움츠리나

치열한 경쟁의 길에 허덕인다

삶의 버거움에 한숨 쉬고

좌절하며 웅크리고

희망에 부풀고 기쁨에 환호하고

사랑에 빠져 행복한 눈물도 흘리고

길 상좌에 올랐다고 어깨 뽕 한껏 올리고

자식 자랑에 해를 넘기고

그 자식 멀어감에 가슴 졸이며

그렇게 길 위를 헤매었었다

찰랑이던 검은 머리에 서리 내리고

그 잘생긴 얼굴에 주름 뒤덮고

등위에 등짐 내려놓을 때는

이곳저곳 병들어 고통이 친구

병상에서 다시 하늘 보고 누웠다

이제는

떠나온 어머니 몸속이 아닌

조상들 누워계신 그 곁으로 간다고

산속 길을 오른다

이 땅에 태어나 떠나본 적 없는데

이 산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었는데

정든 집에는 비료도 사두고

연탄도 가득 사두고

농약 기구로 커다란 우체통도 만들었는데

손길 멀어 정리되지 않은 손때 묻은 물건들

슬피 바라보며 그 곁을 지난다

오동나무 관에 누워 먼길 떠난다

다시 못 올 그 길을

감나무에 감도 따고 밭을 가꾸던 그곳

산으로 둘러싸인 훤한 한 평 땅

조상들이 기다리는 그 터로

평생을 걷고 또 걸어서 ㆍㆍㆍ


산길을 내려오며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나의 발자취가 향기롭고 싶은데 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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