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다릴께

입춘날 아침

by 한명화
모셔옴

오늘은 입춘

새벽잠에서 깬 부부는 따뜻한 침대에서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다

입춘의 옛 추억을 꺼내 놓는 짝꿍

두런두런 입춘날 집안 풍경을 펼쳐 놓는다

아침 식사 후 아버지는 6형제를 방으로 부르 시고는 모두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신다

아버지는 큰 벼루와 먹 그리고 정갈하게 잘라 놓으신 한지를 곁에 두시고는 형들에게는 풀칠하고 가지고 다니며 명하신 곳에 붙이는 일을 그리고 다섯째였던 짝꿍과 여섯째는 먹을 갈게 하셨단다

먹을 팔이 아프게 갈아도 워낙 큰 붓으로 쓰시는 글귀이니 한없이 갈아야 했다고ㅡ

아버지가 글을 써 놓으시면 풀칠해서 아버지 마음에 들게 붙이는 일을 맡으신 위의 형들은 잘못 붙이면 불호령이 떨어져서 붙였던 자리에 잘 맞추어서 붙여야 했단다

큰 대문에는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

입춘을 맞이하여 크게 길하게 하며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글이며

방안의 대들보에는 제일 큰 글씨로 그 해의 년호를 넣고 쓰는데 올해는 계묘년이라

癸卯新年 萬事亨通(계묘신년 만사형통)

이라고 써 붙이셨을 것이라며

외양간 대문에도 써 붙이셨는데

牛如南山虎 馬似北海龍(우여남사호 마사북해용) 소는 남산의 호랑이 같고 말은 북쪽 바다의 용과 같다는 글이다

이 외에도 집안의 수많은 기둥과 문마다 여러 형의 글귀를 써 붙이게 하셨다는 오래전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올곧은 성품과 멋들어진 붓글씨 솜씨를 이야기하며 어린 시절 입춘날 점심때가 넘어가도록 먹 갈기는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에 개구쟁이였을 소년이 친구들이 놀고있는 밖에 눈썰매 타러 가고 싶은 생각에 씩씩 거리며 먹을 갈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한바탕 웃었다

또 오랜만에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인가 명절에 시댁에 갔다가 머리가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다른 방들은 시끌벅적하고 조용한 아버님 방에 누워 쉬라는 큰 형님의 배려로 누워있었는데

아버님께서 오셔서 유난히 사랑 주셨던 앓고 있는 다섯째 며느리가 안타까우셨는지

찬바람 부는 밖에 손을 내미시고는 차가워진 손으로 머리를 짚어 주시고 싶으셨지만 며느리라 망설이시는 것 같아 눈을 뜨고는 ㅡ아버님! 이렇게 짚어 주세요ㅡ라며 손을 잡아 내 머리 위에 올려놓았더니 손을 바꿔 가시며 창 밖으로 손을 차갑게 하시기를 반복하시며 열을 내려 주셨었다

시댁에 도착해 인사들이면 먼 길 고생했다시며 큰 소리로 큰 형님께

ㅡ에미야! 야들 밥 차려 주어라ㅡ라시던

아버님이 그리워지는 입춘날 아침이다

아버님!

너무 그립습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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