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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5. 2019

엄마에게 가는 길 #2 내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

#2  내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

내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정갈함. 늘 마음을 풍요롭게 했던 맛있는 밥상.


아빠의 외벌이에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을 키우던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다.) 2학년 때까지는 안양 변두리의 단칸방에 살았었다. 주인집 바로 옆에 가건물 형태로 지어진 그 단칸방은 세실 화장실이 마당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위치에 있었고, 단칸방 옆에 딸린 부엌은 신발을 신고 나가야만 했었다. 회색의 시멘트 벽이 었던 부엌. 세수하고 씻는 건 그 부엌 한편에 달린 수돗가에서 해결해야 했었던 그때.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씻으려면 물을 데워 써야 했고, 새벽마다 연탄불을 갈러 나가야 했던 곳. 아마 내 밑의 동생들은 어려서  그 집이 기억이 안 날지도 모르겠는데, 난 그 집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어린 나이에 가장 두려웠던 건, 세실 화장실. 세식 화장실은 어린 나에겐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냄새도 그렇거니와 똥통에 빠져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엄마가 집에 있을 때는 엄마가 앞에서 지키고 섰으니 그나마 괜찮았는데, 엄마가 장을 보러 나간 사이 화장실에 갈 일이 생기면 큰일이었다. 그런 날은 나보다도 한두 살 정도 어렸주인집 애들에게 비굴하게 부탁해서 주인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곤  했었는데, 이것들이 툭하면 주인집 텃세를 부려서 모멸감을 느끼게 했었다.

엄마가 어디 가고 없던, 큰 용무가 급해서 쩔쩔 메던 어느 날.  잘난척하는 주인집 애들에게 또 비굴하게 부탁하기는 죽기보다 싫지, 그렇다고 그 무서운 세식 화장실에 가서 큰 일을 보기는 더더욱 싫지.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는 화장실 앞마당에 큰 일을 봐버리고 말았다. 우리 엄마보다 먼저 들어온 주인집 여자가 그 현장을 보고는 "누가 이랬어!" 하면서 성질을 내는데, 당돌했던 나는 시침을 뚝 떼고 모른다고 잡아 땠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주인집 여자도 아니었다. 곧이어 들어온 엄마한테 당신네 세 애들 중 한 명이 그런 게 분명하다고, 당장 깨끗하게 치우라고, 이런 일 한 번만 더 있음 당장 내쫓을 테니 그리 알라고 악다구니를 쳐댔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싸우는 일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 엄마가 한 마디도 못하고 듣고만 있다가 내가 싼 똥을 치우고, 솔로 박박 문질러 닦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엄마한테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했다. 엄마는 그때 그 사건의 범인이 나라는 걸 알고 있을까. 엄마도 그날의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날의 은 그 이후로도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 집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그로부터 몇 달 후이던가. 우리 집은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단칸방이 아닌 곳으로. 게다가 아파트! 24평!


전학 온 다음날, 담임이 나를 부르더니 가정환경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야 그런 조사가 금지되어 있지만, 당시엔 그런 일이 당연시되어  있었다. 아빠 직업이 무엇이냐, 집에 차는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물음은 "집은 몇 평이니?"였다.

당시 나는 평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터라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끔뻑거리다가 우리 집이 104동이란 것을 기억해내고 14평이라고 대충 얘기했다. 왜 104평이라고 안 하고 0을 하나 빼서 14평이라고 했는지 지금도 참 궁금한 일이지만, 암튼 14평이라고 얘기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그 이야길 했더니, 엄마가 가슴을 탕탕 치며 참으로 안타까워하셨다. 엄마는 "우리 집은 24평이야! 24평! 따라 해 봐. 24평!" 우리 삼 남매를 앉혀놓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교육을 시켰다. 그 24평 아파트는, 단칸방을 전전하며 세 아이를 키우던 우리 엄마에게 큰 자부심이었다.


24평 집과, 오랜 시간 후에 이사 간 46평짜리 집을 정갈하게 청소하는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들어오면 늘 풍겨오던 빨래 냄새와 반짝이는 가구들, 정돈되어 있는 모습은 나에겐 늘 당연한 일상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 던져두고 놀이터에 나가서 신나게 놀다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집에 들어오면, 늘 풍겨오던 그 맛있었던 밥 냄새, 찌개 냄새도 내가 누리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우리 엄마의 요리는 맛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엄마가 종종 해주던 카스텔라 냄새. 라면땅 냄새. 군고구마 냄새. 아빠가 종종 사들고 들어오던 전기구이 통닭 냄새. 그 시절, 그 집에 대한 추억은 냄새에 대한 기억이 늘 동반된다. 정갈함의 냄새. 맛있는 냄새.

저녁마다 늘 다섯 식구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으면서 얘기하던 그때. 그 시절의 엄마는 참 생기 있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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