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가는 길 #3 내 엄마의 젊은 날
#3 내 엄마의 젊은 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착실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던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모은 돈과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몇억 원대(당시에 굉장히 큰돈이었다.)의 유산을 자본금 삼아 건축업을 시작했다. 유난히 손재주가 좋고, 꼼꼼하고, 전기 쪽 일에 베테랑이었던 아빠는 사업을 금방 일으켜 세웠다. 집안이 나날이 윤택해져 갔다. 엄마의 그간의 고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엄마에게도 차가 생기고, 엄마가 운영하는 번듯한 가게도 생겼다. 46평 새 아파트로 이사 간 것도 이 즈음이었다. 여전히 엄마는 생기 있었고, 아빠와 엄마는 같이 테니스나 볼링을 배우러 다니며 여가를 즐겼다.
하지만 이 평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쯤 IMF가 터졌다. 자그마한 기업들도 줄줄이 도산하던 그때, 아빠가 운영하던 사업체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첫 번째로 벌인 사업에서 큰돈을 만져본 아빠는 대출받아서 사업을 더 크게 늘린 상태였는데, 은행 대출상환을 하지 못했다. 완공을 코앞에 둔 건물을 통째로 은행에 압류당했다.
부자는 망해도 몇 년은 간다던데, 다 자기들 살 길은 마련하고 망한다던데, 아빠는 전혀 그러하질 못했다. 정말 일원 한 푼 남긴 것 없이 다 날려버렸다. 은행 대출 상환을 위해 여기저기서 빌렸던 돈들도 갚을 길이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오니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이 울고 있었다. 아빠에게 2000만 원을 빌려줬다 받지 못했던 작은 아빠가 찾아와서 아빠 멱살을 잡고, 돈 내놓으라고 쌍욕을 하고 행패를 부리고 갔다고 했다. 어린 조카가 앞에서. 아빠는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온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돈이 없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 무서운 건지 몸서리치게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살던 집도 압류당했다. 다섯 식구 살 집을 새로 구했다. 반지하 집. 방하나에 거실 겸 주방 하나 있는 집으로 쫓겨나듯 이사 나왔다. 가전제품이고 가구고 챙겨 나올 것도 없었다. 새로 구한 집이 좁아 들어갈 자리도 없었다. 반지하라 눅눅하고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동굴 같았던 그런 집.
그곳에서 엄마와 아빠는 매일매일을 몸서리치게 싸웠다. 엄마의 악다구니는 절규에 가까웠다. 엄마가 그리도 자부심을 가지고 지키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 예전 지지리도 가난했던 시절보다 더한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엄마의 상실감이 얼마나 깊었을까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단지 엄마의 한풀이를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서로가 악을 쓰고 싸워댔다. 엄마, 아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갔다.
아빠가 집을 나갔다. 연락두절이었다.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두려웠다. 어디 가서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 돈 한 푼 없을 텐데 밥은 먹고 다니나. 아빠가 죽을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웠다.
그 와중에 그 반지하방에 빨간 압류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얼마 안 남은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에 빨갛고 네모난 압류딱지가 붙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압류딱지를 붙이던 아저씨는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위로의 말을 던지고 갔다. 희망.. 희망이라니.
당장 밥 해먹을 돈도 없었다. 엄마는 이사 간 동네 식당을 기웃거리다가 일자리를 얻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허드레 일하는 자리였다. 하루 12시간 동안 꼬박 일을 하고 일당을 얻어왔다.
그때의 엄마의 퀭한 눈. 초점 없는 눈. 아무런 희망이 없는 눈. 고통이 가득한 눈동자는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시절 엄마의 나이.
마흔 살.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내 엄마의 푸르디푸른 젊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