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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6. 2019

엄마에게 가는 길 #4 무슨 엄마가 이래

#4 무슨 엄마가 이래

엄마의 눈은 퀭하다. 텅 비어있는 듯한 눈동자.

이른 아침 식당일을 하러 나가는 엄마 얼굴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넋이 나간 여자처럼 일을 나가고,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신세한탄에 이어 통곡을 한다.

"부모복 없는 년이 무슨 남편복이 있겠어. 이 놈의 팔자! 이 더러운 놈의 팔자! 나한테 다 미루고 지한몸 내빼면 다야! 이인간 어딨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본 말. 지긋지긋한 그 말.

울음소리에 내 정신도 피폐해진다. 진절머리가 난다.

"그만 좀 해! 그만 좀 하라고! 아. 짜증 나." 나도 있는 대로 성질을 낸다.

"딸이라는 게 말하는 것 좀 봐. 이놈의 팔자에 자식복은 무슨. 나가! 다 나가버리라고!"

더 큰 소동이 난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그 반지하집에선 엄마와 나, 서로가 서로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그 집은 햇볕만 없는 게 아니었다. 희망도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힘겨워서였으리라 짐작하는 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의 얘기다.

그땐 그런 엄마의 얼굴이 나에겐 짜증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엄마의 악다구니에 집안 모든 사람들의 피가 바짝바짝 마른다고만 생각했다.

아빠가 사라졌다. 엄마의 온갖 악다구니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아빠가 사라졌다고만 생각했다.아빠가 불쌍했고, 알 수 없는 생사에 애가 탔다.


가끔씩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 아무런 말없이 내 목소리만 듣고 있다가 끊겨버리는 전화.

"아빠? 아빠야?"물어도 침묵뿐인 전화.

애타게 발만 동동 구를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두려웠다. 아빠가 어디 가서 죽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봐. 무서웠다. 평생 큰 한으로 남는 일이 벌어질까 봐.

나중에는 그냥 끊는 전화가 오면 안도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빠일 거란 확신하에 아빠가 안 죽고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당시의 나에게 이 모든 상황은 다 엄마탓이었다.


대학을 다니고 있던 나는 학교를 가려면 교통비와 점심값이 필요했다. 학교 앞에 나가  일반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건 꿈도 못 꾸고, 학생식당에서 파는 500짜리 라면을 사 먹고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학교를  다니려면 하루 최소 5000원이 필요했다.

학교에 갈 채비를 하곤 엄마가 일하는 식당 주방 쪽 문을 기웃거리면 엄마가 나와서 5000원을 주곤 했다. 그 5000원을 받으러 가는 길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엄마에게서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미리 마음에 철벽을 둘러야만 했다.

"학교 때려치우고 돈이나 벌어와! 학교 뭐하러 다니는데? 집안이 이 꼴인데 큰딸이 되가지고 뭐 하는 거냐고!" 엄마가 유난히 힘든 날들이었을까.종종 날아와 내 가슴에 꽃히던 그 말들. 진저리 치게 듣기 싫었던 말.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말.


하루는 엄마가 앞치마에 물을 잔뜩 묻힌 체 나와서는

"너 들어와서 설거지 좀 하고 가. 힘들어 죽겠어!" 하며 잡아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잡아 빼고는 "싫어! 무슨 엄마가 이래!" 소리소리 지르며, 씩씩대며 뒤돌아 나왔다. 서럽고 서러워서 엉엉 울면서 학교엘 걸어갔다. 가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

왕복 세 시간을 걸어 다녔다. 점심도 거르는 날이 많았다.


대학을 다니는 건 사치였다. 책을 사볼 돈도, 교통비도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당장  돈을 벌어오는게 더 절박했던 날들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으로 공부만 해왔고, 아무걱정없이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대처할 용기가 없었다. 내가 뭘 해야할지 누구든 붙잡고 묻고싶었다. 할줄아는게 공부밖에 없던 나는 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려워서 엄마를 방패막이삼아  숨고만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내모는 엄마를 원망하고 또 미워했다.


다음 학기는 휴학을 했다. 학비 낼 돈이 없었다. 샌딩  공장, 커피숍, 식당 써빙, 뷔페알바, 공공기관 설문지 조사원. 닥치는대로 알바를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가. 나는 마음속에서 엄마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늘 자식들에게  헌신했던 엄마이기에 배신감은 더 컸다.

무슨 엄마가 이래. 엄마 같지도 않은 엄마.

나는 그 반지하 집에서 완벽하게 엄마에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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