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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7. 2019

엄마에게 가는 길 #6 바퀴벌레 다 나와!

#6 바퀴벌레 다 나와!

압류딱지 가득했던 그 반지하 집에서 2년을 살고  자그마한 빌라 2층으로 이사를 했다.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처음엔 그저 좋았다. 햇볕이 들어오니까. 눅눅하지도 않고, 곰팡이도 없었으니까. 반지하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햇볕을 얻은 대신  새로운 시련이 찾아왔다.

그 2층 집은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학교를 휴학하고 학원강사를 하고 있던 나는 2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했다. 엄마는 12시 넘어서 일이 끝나므로 집에 오면 늘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불을 켜는 순간부터 공포는 시작된다. 전등불이 탁 켜지면, 내 눈길을 사로잡는 건 시커먼 바퀴벌레 떼들. 주방 벽 여기저기, 거실 바닥 여기저기를 활보하던 바퀴벌레 떼들은 불을 켜는 순간 후다다닥 떼 지어 사라진다. 그것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사사사삭'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만큼 많았다. 불을 켜는 순간부터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루 종일 강의를 하느라 말을 많이 하면, 배가 많이 고프다. 그런데도 가스레인지를 켜지를 못했다. 라면조차 끓여먹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있던 그 많던 바퀴벌레들이 생각나서. 배는 고프지, 그렇다고 가스레인지를  쓸 수는 없지. 내가 생각해낸 건  전자레인지.

학원 강의를 마치고 집 앞 슈퍼에 들러 추억의 옛날 소시지(그 분홍색 소시지 말이다.)를 하나 사들고 집에 들어가선,  가위로 소시지를 대충 잘라  접시에 얹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전자레인지에서 펑펑 소리가 나면 다 익은 거다. 꺼내면 된다. 밥솥에 있던 밥을 퍼서 방에 가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밥그릇 하나, 수저 하나, 접시 하나는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그 집에 살면서  설거지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싱크대 근처엘 가질 못해서였다. 난 정말 바퀴벌레가 무서웠다.

바퀴벌레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마른오징어를 먹다가 잠시 접시 위에 그대로 놓고 슈퍼에 다녀온 사이 오징어가 까맣게 변해버렸다. 흠칫 놀라 자세히 보니, 수많은 개미떼들이 오징어를 감싸고 있다. 난 개미들이 디단 과자 종류나 좋아하는 줄 알았지 오징어에 그렇게 환장하는지 몰랐다. 새까맣게 오징어를 덮고 있던 그 수많은 개미떼들은 바퀴벌레보다는 덜 무섭지만 그래도 징그러운 건 마찬가지. 청테이프를 굴려 그 수많은 개미떼들을 잡으면서 어찌나 몸서리를 쳤던지.

이전에 살던 반지하가 그리울 정도였다.


내 살림을 살고 있는 지금, 마트에 가서 저녁 찬거리를 고르다가 '추억의 분홍 소시지'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아득한 옛날 생각, 그 집 생각, 그 시절의 엄마와 나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혀 한참을 서 있는다. 더 센티해지는 날이면 그 '추억의 분홍 소시지'를 스윽 집어와 계란물을 묻혀 프라이팬에 부쳐낸다. 가끔은 그 분홍 소시지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있어 계란옷을 입혀 정성껏 부쳐주기로 했다.


이젠 가스레인지를 켤 수 있다. 바퀴벌레는 지금 내 집에 없다. 설령 있다 해도 난 이제 바퀴벌레 한두 마리쯤에 '꺄악 꺄악' 소리를 질러댈 군번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두 아이의 엄마다.  그 무섭다는 대한민국 갱년기로 접어들고 있는 아줌마다.


덧붙이는 글: 나의 두 아이들에게'엄마앞에  바퀴벌레가 나타난다면 엄마가 어떻게 할 것같아?'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림으로  멋지게 표현해준  내 새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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